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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May 24. 2022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간 곳

보고 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한동안 유튜브를 통해 '연애의 참견'이라는 프로그램 사연 소개 부분만 주구장창 본 적이 있다. 한 3일 만에 빠져나왔나? '연애의 참견(이하 '연참')'은 현재 KBS joy에서 방영 중인 무려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연애 진단 프로그램이다. 한혜진, 김숙, 곽정은, 서장훈, 주우재가 공동 진행을 맡아 사연 소개, 진단 및 조언을 해준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접한 건 친구를 통해서다. 단톡방 내 친구 둘이 종종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연과 감상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구나 인지는 했다. 다만, 흥미가 느껴지지 않아 항상 친구들이 얘기를 하면 '그렇구나'하고 확인만 했다. 


그러다 엄마가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고 있길래 옆에 있다 같이 봤는데 영 불편했다. 저렇게 사연을 보내서 조연을 해봤자 어차피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 아닐까? 하면서 여전히 회의적인 모습으로 등 돌린 채 한참 시간이 지났다. 


최근 한 친구가 일주일 동안 '연참'만 봤다는 얘기를 듣고 코웃음 쳤다. 코웃음 친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흘러온 알고리즘에 뜬 '연참'을 보았고 내가 본 첫 '연참' 에피소드는 친구 결혼식에 간다더니 본인 결혼식이었다 라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제 사연이었다. 나는 사연을 소개하다 소리 지른 진행자들과 같이 육성으로 놀라고 말았다. 


어머 어머머 저 미친 새끼!!!


이후 관련 영상 대부분 '연참'으로 도배될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사연 소개 코너를 챙겨봤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다니! 무엇보다 연인 관계라고 할 수 없는 상대방의 범죄적 행태를 진행자가 짚고 넘어갈 때마다 남의 일이라고 모른 척했던 나를 떠올렸다. 둘 만의 문제라고 치부하던 걸 겨우 세상 밖에 끄집어내고자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였다. 당장 내 일이 아니니까. 아마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가스 라이팅 하며 스토킹, 집착, 인격모독 등의 행태를 벌이면 그게 잘못된 것도 모른 채 관계를 이어가는데 매달렸을지도 모르지. 


가끔 진행자 사이에 의견이 갈릴 때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정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통 목적은 이 사연을 보낸 당사자가 오래오래 무사하게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거였으니까. 여기에 회차가 더해질수록 진행자들의 연기력이 엄청나지는 것도 킬링 포인트다. 개인적으로 김숙, 서장훈 씨가 주연을 맡고 주우재 씨가 조연을 맡을 때 가장 재밌다. 물론 공주 애인 역할(?)을 한 한혜진 씨의 연기도 가히 상당했다. 


문득 이런 프로그램을 보기 싫어했던 건 내가 일대일 관계를 불편하게 여겨서였을까 싶다. 사연 속 주인공처럼 완전히 뛰어들어본 적이 없어서?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사랑은 믿으면서 일대일 관계에 대해서는 왜 회의적인지, 왜 자꾸 도망가려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생각을 해보려 한다. 더 피하려고 보니 사랑의 힘을 믿는 모순적인 나를 두고 볼 수만 없지. '연참' 사연 소개의 굴레에서는 겨우 빠져나왔지만 조만간 유튜브 알고리즘이 날 또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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