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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P Aug 30. 2022

3. 표 하나로 유일하게 면접 합격한 썰

위트는 여기까지 



인생은 역시 한 방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매사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그 순간순간에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발산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둘은 다른 케이스다. 하지만 과정을 모른 채 결과만 놓고 본다면 어떨까? 그냥 결과물이 좋은 사람, 결과물에 집중도가 높은 사람이 이기게 된다. 물론 좋은 결과는 좋은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적인 진리는 아니다. 때로는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훨씬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도 하니 말이다. 

이게 된다고?


나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꼼꼼하게 하나하나 체크할 시간도 없었고, 따져볼 시간조차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목표는 단 하나였다. 제한 시간 내에 그래도 제출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자소서를 완성하는 것. 그때 나는 정석의 방법은 지금 통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진중함보다는 임팩트를 우선적으로 택했다. 당시 내가 자소서를 써야 했던 B 프로그램에는 마침 새로운 코너가 도입이 되었다. 그걸 보자마자 나는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잘 활용을 하면 프로그램을 봤다는 것을 티 낼 수도 있고, 이것을 활용하는 재치도 함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원하는 곳은 일반적인 회사가 아닌 재미, 흥미가 위주가 되는 방송국이었던 만큼 이것이 통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당시 새 코너는 어떠한 주제에 있어서 연차별로 태도가 바뀌는 것에 대해 표정 변화를 보여주면서 웃음을 주었다. 이걸 어떻게 자소서로 활용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그리 오랜 시간 지나지 않아서 해답을 찾았다. 


역지사지는 어디서든 통한다.


나는 저 연차별 표정 변화를 나의 상황에 대입했다. 면접 1~2회 차, 3~5회 차, 6~9회 차, 10회 차 이상의 표를 그린 후 자신감과 의욕이 넘치는 표정부터 시작해 점점 시무룩해지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넣었다. 그리고 '난 한창 자신감 넘칠 면접 1회 차다! 이럴 때 날 뽑아가라!'는 멘트를 쓴 후 바로 제출을 했다. 쓰면서도 이게 될까 의심이 가득했지만, 당시 나에게는 그런 고민은 사치일 정도로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데 그게 됐다. 


나는 면접 연락을 받고 방송국에 첫 입성을 했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방송국은 매우 커 보였다. 진짜 내 꿈에 한 걸음 다가선 기분. 몇 년간 꿈만 꿔오던 공간에 눈앞에 있는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그렇게 부푼 마음을 품고 나는 방송국 문을 두드렸다. 당시 면접을 보는 공간까지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방문증을 프런트에서 발급을 받아야 했는데, 나는 이상한 오기로 원래 여기 다니는데 오늘 출입증을 까먹고 들고 오지 않은 척을 하며 방문증을 발급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누가 봐도 첫 방문인 게 티가 났을 텐데 말이다. 


'얘가 걔야'


그렇게 들어간 방송국에서 나는 PD와 메인 작가를 만났고 면접을 봤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얘가 걔야'라는 이야기를 했다. 첫마디 치고 기분 좋을 멘트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 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달까? 훗, 내가 이제 진짜를 보여주지!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멘트였다. 


그렇게 나는 준비했던 면접을 잘 치렀고, 1시간 반에 걸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바로 합격을 했으니 출근을 했으면 한다는 전화였다. 그렇게 나는 우리 기수에서 가장 먼저 공중파에 입성을 했다. 이 소식은 동기들은 물론이고 담당 선생님도 놀라워했다. 22살의 패기가 통한 날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같이 나에게 물었다. 그 자소서로 어떻게 합격을 했냐고. 하지만 자소서의 위트는 자소서까지. 나의 진면모는 면접에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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