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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P Oct 04. 2022

5. 주 7일 근무하는 회사 다녀본 사람?

현실과 이상의 괴리


생각한 것과 현실에는 늘 차이가 있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을 늘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직접 경험했을 때 내가 생각한 것과의 차이가 크다면 그것에서 오는 괴리감은 상당하다. 그래서 우리는 늘 무언가를 시작할 때 '큰 기대하지 말고 시작해라'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무런 기대감 없이 시작을 해야 작은 감동도 큰 감동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단련해야 하는 일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경험치 Lv.0 시절이던 10년 전에는 그게 전부였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겪고, 느끼고, 그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에야 '그땐 그랬지'라며 회상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10년 전,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서울로 상경을 했고 방송작가 일을 하며 많은 일을 겪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경험한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비교할 수 없는 다른 경험치가 없었으니까. 그냥 그게 맞다고 생각을 하고 해왔던 것이다. 


당시 방송국의 스케줄은 매우 빡빡했다.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은 없는 것은 기본. 섭외와 촬영 일정, 소품 준비 등에 대한 압박감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었고 주말, 휴일도 없이 그저 방송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온 날을 쏟았다. 당시 나는 고시텔에서 지내면서 출퇴근을 했었는데 고시텔과 방송국의 거리는 지하철로 1시간이 넘는 시간이었다. 물론 당시 내가 다니던 방송국은 자정이 넘는 시간에 퇴근을 하면 택시 카드로 택시비를 지원해줬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날이 해당이 되었기 때문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집에 갈 때에는 택시를 타고 빠르게 갈 수 있었다. 사실 취업을 하고 빠른 시일 내에 방송국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기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집을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주말 하루조차 나에게 허용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쉼 없이 달리기만 하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마음의 체력, 신체적인 체력은 바닥이 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여기는 서울. 당시 내 나이는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겁게 느껴졌다. 


'배부른 소리'에도 이면이 있다.


사실 회사 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느낀다. 회사 다 거기서 거기고, 어떻게든 취업은 하게 되어 있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취업 준비를 할 때에는 와닿지 않는다. 내가 닿지 못할 저 먼 곳에 있는 별 같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렇다 보니 어디든 취업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부럽게 느껴지곤 한다. 그때 내가 그랬다. 


당시 나의 나이는 22살이었다. 사실 이 나이에 친구들은 아직 대학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친구 반, 취업을 위해 자격증이나 스펙을 쌓는 친구들이 반이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할 때도 아닌 셈이다. 그렇다 보니 이미 취업을 했고, 게다가 서울 메이저 방송국에 들어갔다? 이건 거의 성공한 인생이나 다름이 없는 느낌이었다. 나의 푸념이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배부른 소리라고. 그래서 나는 더욱 친구들에게 나의 힘듦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들이 취업을 얼마나 막막하게 바라보고 있을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번아웃 또는 회의감


충전하거나 회복할 시간 없이 매일 힘든 시간을 겪다 보면 누구든 터지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평소 나는 눈물이 정말 없는 편이다. 그런 내가 그때는 혼자 있는 시간만 되면 그렇게 눈물을 흘렸더랬다.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면서 '진짜 내가 원했던 게 이게 맞나', '내 꿈이 이건데 평생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건가' 생각에 빠졌다.  


참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었음을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누구보다 패기 넘치게 자소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보던 나인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나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이 정도밖에 안돼?', '이것도 못 버텨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나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 끝까지 차오른 나의 인내가 퇴근 후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바로 고향집이었다. 


다행히 촬영이 일찍 끝난 날이었다. 그래도 이미 저녁 8시가 넘었던 시간이었는데 사무실에서 짐 정리를 하고 난 후 나는 고시텔이 아닌 터미널로 향했다. 거의 홀린 듯이 움직인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정이 되어서야 도착한 부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내 방으로 가 잠을 청했지만 그 순간의 따스함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순간 중 하나다.  


여기서는 못할 게 없지!


전날 새벽에 부산에 도착한 나는 바로 당일 저녁에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 했다. 딱 하루 집에서 재택으로 일을 하는 날에 맞춰 내려왔기 때문이다. 내일부터는 다시 출근을 해야 하니... 장소만 달라졌을 뿐 나는 여기서도 일을 해야 했다. 작가 언니들이 보내주는 대본 정리, PD에게 대본 전달 등의 일 등 주어진 업무가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일인데 부산에서 하니 뭔가 느낌이 달랐다. 바닥을 쳤던 자신감이 다시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서울에 있을 때의 나는 굉장히 경직이 되어 있었다. '실수하면 안 돼', '잘해야 해', '무조건 성공해야 해'라는 부담이 컸으니까. 하지만 같은 일인데도 부산에서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 '여유 있게 하자'는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바로 옆에 가족이 있고, 바로 옆에 친구들이 있어서인지 그냥 그것만으로도 내게 큰 위로가 된 것이다.   


어쨌든 나는 짧은 시간에 가족들과 밥 한 끼를 먹고, 친구 얼굴을 잠시 보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3시간 정도의 이동 시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굉장히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게 지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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