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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Sep 25. 2024

버섯꽃

오랜만에 장구봉에 올랐다. 비가 와서 산에 오르는 게 -아무리 작고 낮은 산이라 할지라도- 왠지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하루이틀 미루다 보니 며칠이 되어 버렸다. 수분을 양껏 머금은 나무들이 뭉쳐져 하나의 산을 이루어 뿜어내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 아주 깊고 오래된 숲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느낌이 조금 과장하면 마치 원시림에 파묻힌 것만 같다.


비가 온 후 쑥쑥 자란 버섯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그동안 산에 여러 번 오면서 내가 버섯을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사실 오늘만 해도 산길을 따라 둘레를 두어 바퀴나 돌았지만 버섯은 없었다(?). 세 바퀴째 돌면서 버섯이 어디선가 갑자끼 뿅 하고 나타났다. 나는 어째서 두 바퀴를 도는 동안 버섯을 전혀 보지 못했는지 의아했다. 내가 그토록 다른 생각에 골몰했단 말인가?


산길 한편에 쪼그려 앉아 버섯에 감탄하며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낼 즈음 역시 산 둘레를 돌던 아주머니 한 분이 저 여자가 도대체 뭘 그렇게 열심히 쳐다보나.. 하는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고 나의 시선을 쫓는다. 내가 뭐라 대꾸도 하기 전에 아주머니가 놀라 탄성을 지른다. 산을 몇 바퀴째 도는 중인데 버섯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며 포동포동 살이 올라 뽀얗고 예쁜 게 아무래도 독버섯 같다며 발로 건드리려고 해서 내가 기겁하며 급히 말렸다.


아주머니에게 버섯과 함께 아주머니 발을 사진 찍어도 되냐고 여쭈었더니 아주머니가 별 재밌는 사람도 다 있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얼마든지 찍으란다.  아주머니의 신발 신은 발과 버섯을 찍으려는데 아주머니 표정은 마치 전신이 사진에 담길지도 모른다는 듯 긴장한다.


아주머니가 목화솜꽃(?)이나 팝콘 같이 벌어진 버섯의 갓을 보고 내게 묻는다. 누가 윗부분에 칼집을 넣었나? 수사적 질문이 아니다. 나는 웃음이 터진다. 설마..  표고버섯처럼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었거나 혹은 과실이 익어서 벌어지는 것처럼 버섯도 그런 거 아닐까요? 라고 대답을 하는 나나 질문을 한 아주머니나 참 무식이 철철 넘쳐흘러 서로 민망해하며 객쩍은 웃음을 나눈다.


우리가 버섯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산을 돌던 또 다른 아주머니가 얼굴을 디민다. 우리 사이에 버섯이 있는 걸 보더니 말릴 새도 없이 버릇을 발로 툭 차버린다. 버섯이 힘 한번 못써보고 옆으로 뒹군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식을 내지른다.


버섯이 꽃같이 이쁘구먼..  사진 찍으라고 선뜻 발을 내어주신 아주머니가  자신도 버섯을 발로 부러트리려 했다는 사실을 잊은 채 타박을 한다. 버섯보기를 돌같이 한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독버섯 같아서 그랬다고 변명을 한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는 어여쁜 버섯꽃을 잃고 말았다.


다들 왜 그리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걸까.. 분명 버섯을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 버섯도 자신의 소명(?)대로 피고선 질터인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굳이 발을 뻗어 뭉개고 보는 그 심리가 괘씸하다. 내가 내 갈길 가며 그냥 혼자 보고 감탄했다면 길 섶에 있어도 버섯은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았을텐데.. 버섯이 그리 된 것이 내 탓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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