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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Sep 26. 2024

산들바람꽃의 오래된 합격수기

이런 글쓰기를 다해봤네..^^

얼마 전 카페 가입을 하려다가 10여 년 전에 가입하고 활동을 멈추었음에도 여전히 열성회원 타이틀을 달고 있는 카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산들바람꽃이었다.^^


관련 직종에서 일을 하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했고 덕분에 그쪽분야에서 10년 이상을 근무하다가 지금은 또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난 그 일이 참 좋았었다.


카페 타이틀을 보자마자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 애쓰고, 함께 학원에서 수강하면서 친해졌던 친구들.. 경희, 현주, 미경.. 이제는 얼굴도 희미해져 버렸지만 덕분에 학원생활이 정말 재밌었고 즐거웠다.


우리는 공부하러 가서 만난 사이지만 점심시간에 함께 밥 먹으러 가는데 진심이었다. 마침 앞뒤로 앉은 네 명이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다들 도시락을 싸 오는 분위기였음에도 우리는 그와 무관하게 의기투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

"그럼 그럼! 다 먹자살자고 하는 일 아니야? 안 그래?"

"그래그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잖아?!"

마침 학원 위치가 본정통-지금은 성안길이라 부르는, 당시의 번화가와 매우 가까워서 넷이서 매일 메뉴를 달리해 한 시간 만에 뚝딱 비빔밥, 만둣국, 수제비, 돈가스 등등 맛있다는 집들을 찾아다녔다.


그날도 그랬다. 늘 그렇듯이 먹거리에 일가견이 있는 현주의 강추에 따라 숯불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문제는 시간과 위치와 메뉴였다. 한 시간 안에 고기를 구워 먹고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숯불고깃집으로 가서 정말이지 맞바람에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 쏜살같이 학원으로 되돌아왔다.


부랴부랴 서둘렀음에도 3,4분쯤 늦었던 거 같다. 수강생 13명 중 네 명이 아직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으니 강사님이 시간도 벌어줄 겸 수강생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대답을 해주고 계셨다.


우리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조용히 자리에 앉으려다 누군가 책상 모서리에 걸려 책상다리가 강의실 바닥을 긁는 바람에 생긴 파열음으로 그렇잖아도 싸늘한 분위기를 찌릿찌릿하게 만들어 우리끼리는 웃음을 참으려 무진 애를 썼더랬다.


수강생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어찌 모르겠는가.. 진짜 문제는 냄새였다. 고기 냄새가 머리에서 옷자락에서 수업시간 내내 폴폴 새어 나왔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학원의 문제아들이 되었다.


2차까지 시험이 끝나고 최종 2명이 합격했다. 우리 중에는 내가 합격이 되었는데 현준가 경흰가가 말했었다.

"언니, 언니라도 합격해서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맨날 밥이나 먹으러 다니니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소릴 들었을 거예요 ㅋㅋ"


현주와 경희가 동갑이었고, 미경이 나와 동갑이었다. 학원 생활이 끝나고 서서히 연락이 뜸해지다가 그마저 끊기고 말았지만 미경과는 여전히 잊을만하면 한 번씩 소식을 전한다.


그때 한 달이었던가.. 짧은 학원 수강을 마치고 자격증 취득 후 카페에 올린 합격수기.. 대단한 것도 아닌데 수기를 써서 올렸다는 것도 재밌지만 그걸 다시 접했다는 게 너무 놀랍다. 덕분에 그때 생각도 나고, 접혀있어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찾은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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