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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Oct 13. 2024

복자씨의 별사탕

은수와 은석의 이야기 5

은석의 엄마가 방과 부엌과 마당 안 밖을 쓸고 닦고, 어지간히 이삿짐에 제자리를 찾아주었을 때쯤 은석의 아버지가 학교를 마친 은숙이와 재봉이를 데리고 왔다. 은숙이와 재봉이는 새로운 학교로의 전학도 얼떨떨한데 아침에 등교를 위해 길을 나섰던 집이 아닌 다른 집에 도착하고 보니 낯설고 어색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전에 살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내팽개쳐진 것 같은 낭패감마저 들었다.


"엄마, 어딨어?" 은숙이 엄마를 찾으며 마당을 들어섰다.

대답이 없자 은숙이와 재봉이 동시에 엄마를 부른다.

"엄마, 우리 왔어! " 은숙이와 재봉이는 책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엄마를 찾기에 바빴다. 은석이 언니와 오빠의 목소리가 들리자 얼른 방문을 밀고 나왔다.

"은석아, 엄마는?" 은숙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물었다.

"응, 저기에 물 뜨러.." 은석이 우물이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재봉이 가방을 벗어던지며 잽싸게  마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집 안을 둘러보려던 은숙이 그 뒤를 쫓아갔다.


은석이네 집 울타리 안에는 우물도 펌프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한 건 우물이 은석이의 집에서 서너 집 건너 만큼의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은수네가 이태 전 펌프를 놓으면서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는 이웃들에게 함께 펌프를 설치하자고 은수의 아버지가 제안을 했었다. 그렇지만 은석이네와 탱자나무를 울타리로 하는 연순이네는 시간이 될 때마다 인근 읍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는 친정집을 돕고 있는 관계로 친정집 근처로의 이사를 엿보고 있었고, 꼬부랑 할머니는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며 우물물을 길었다.


은숙이와 재봉이가 엄마를 찾아 우물이 있다는 쪽으로 뛰어나가고 난 후 은석의 아버지는 눈으로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부엌문과 방문을 차례로 열어보았다. 방 두 개엔 방문이 하나씩 달려있었지만 두 개의 방은 벽이 아닌 미닫이 문으로 분리가 된,  말하자면 둘로 나뉜 방 한 칸인 셈이었다. 고만고만한 방이지만 그래도 얼핏 봐도 조금은 커 보이는 방 서랍장 위에는 이불과 베개가 개켜져 있었다. 은석의 아버지는 마구리에 모란꽃이 수 놓인 길고 둥그런 베개 하나를  방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아버지는 그대로 모로 누워 베개를 베더니 금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아직 해 그림자가 길지 않았지만 은석이는 금방 어둠이 들이닥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언니와 오빠를 따라 엄마에게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신발을 신고 댓돌을 내려오려는 찰나 노란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눈앞을 스쳐 날아갔다. 은석은 잠깐 망설이다가 엄마에게 가려던 마음을 고쳐 나비를 따라갔다. 탱자나무 꽃 향기에 홀렸는지 나비가 탱자나무 하얀 꽃잎 주위를 맴돌다 사라졌다.


커다란 탱자나무 줄기와  잎사귀 사이사이를 길고뾰족한 가시가 촘촘히 엮어놓았다. 아까 찔린 손가락 끝이 다시금 아려오는 것 같아 탱자나무 앞 서너 걸음 앞에서 머뭇거릴 때 얽힌 탱자나무 가지들 안에서 누군가 은석을 순진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은석은 깜짝 놀랐지만 그 건 낯선 눈길 때문이 아니라 가시덤불 속에 자리를 잡고 별 다른 경계없이 은석을 바라보는 참새들 때문이었다.


참새들은 겁도 없이 억세고 사악한 마녀의 길고 뾰족한 손톱같은 가시가 빼곡한 탱자나무 사이를 거침없이 들락거리며 별같이 하얗고 예쁜 꽃의 은은한 향기 속에 저희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들은 정녕 아무 걱정이 없는 듯했다.

                                                      사진출처 : https://blog.naver.com/snsmento/223616985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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