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들이 빠져나간 공간, 갑자기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에 잠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인다. 일에 파묻혀 살 때는 몰랐는데 상대적으로 나만의 시간이 조금 더 늘다 보니 일상을 보는 생각도 시선도 달라진다.
창문을 열어 밤새 묵힌 공기를 내어 주고 신선한 공기를 공급받는다. 햇살마저 싱그럽다. 몸만 빠져나가 허물을 벗어놓은 것 같은 옷들을 주섬주섬 주워 들다가 창 한편으로 새어 들어온 조각난 햇살에 나비처럼 너울대는 먼지를 피해 고개를 돌린다. 피식 웃음이 난다. 조각난 햇살이 비낀 곳이라고 먼지가 없는 것도 아닐 터인데.. 문득 보이지(들리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아니다가도 보이면(들리면) 문제가 되는 경우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잠이 들었을 시각, 얼핏 잠에서 깨었다. 시간을 확인하려 들여다본 핸드폰 불 빛이 눈을 찔러와 그렇잖아도 제대로 떠지지 않은 눈이 찡그려진다. 한밤중을 훨씬 넘은 시각이다. 기왕 눈을 뜨고 보니 다시 잠이 들 거 같지가 않다. 뜨거운 차라도 한 잔 할까 싶어 조심조심 방을 나왔는데 아주 작고 낮은음으로 이야기하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아들 녀석의 방이다. 게임 방송 중이다. 걱정의 크기만큼 화가 났다. 내일 어쩌려고.. 이후의 상황은 굳이 말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 같다.
방송을 망친 아이가 항변했다. 아이의 말대로 아이가 밤새 방송이 아닌 게임을(혹은 다른 어떤 것을) 했다면.. 아무 소리 없이 불 꺼진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게임을 했다면 나는 화가 났을까. 아니 눈치라도 챘을까. 나는 아마도 아무것도 모른 채 뜨거운 허브차를 마시며 맥없이 창밖을 보다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책을 펼치거나 말이 되기 전의 생각들을 키보드로 옮기려 애쓰려 하지 않았을까..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문제 삼지 않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나는 아이가 그 나이대에 할 법한 무언가에 미쳐보는 거에 딴지를 걸고 싶지 않다. (물론 게임이라는 건 과몰입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 조금 더 피곤해하겠지만 어쨌거나 일어나 밥 먹고 씻고 제 할 일 하러 가는데 무슨 문제랴 싶다.
엄마로서 그리고 아이와는 다른 세상에서 같은 나이대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아이가 사는 현재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세대차이라는 이름으로 치부하고 싶지도 않다. 빛 속을 떠다니는 먼지를 피하듯 고개를 돌리고 싶지도 않다. 당장 어떤 생각이 옳은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나는 아이에 대한 예의를 지켰어야 했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마음을 정리하고 화를 내더라도 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불을 개고 벗어둔 옷을 갤만큼의 시간만큼만 내 마음을 바로 펴고 정리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임을.. 아이가 벗어둔 옷을 개키면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