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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May 05. 2020

이 부부가 연휴를 대하는 자세

당신은 정규직이잖아


“자기야~~ 나 6,7,8 휴가 냈어.”

지난주 수요일 퇴근한 남편이 현관문을 들어서며 신이 나 말했다.

“괜찮지?”

‘가만있어 보자. 그러니까 내일이 30일 부처님 오신 날이고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 5월 4일은 샌드위치니까 쉬고.’

“그럼.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자기 회사 괜찮으면 되는 거지.”

괜찮은 척 이야기하며 다시 머릿속으론 계산기를 두드렸다.

‘5일은 어린이날인데 6,7,8 일을 쉬면? 9,10일은 주말이니까 11일을 논다는 거야?’


망했다!!!!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하지 못하는 남편을 보면 이렇게 긴 연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군인이 달력에 제대 날짜만 바라보며 사는 것처럼 직장인들은 달력의 빨간 날만 보며 산다. 올해는 몇 번이나 쉴 수 있나 가 아마 가장 중요한 새해 업무이지 않을까. 남편 역시 새해 달력을 받으면 빨간 날을 제일 먼저 체크한다. 빨간 날이 주말에 걸려 있으면 아까워하고 목요일이나 화요일에 걸려있으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샌드위치 휴일을 쉬는 회사 규정 때문에 쉬는 날이 하루 늘기 때문이다.


남편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월차, 연차를 알뜰히 챙겨 쉬었다. 가끔 TV에서 보는 월차 쓸 때 눈치 보는 그런 일 따위는 없었다. 물론 프로젝트가 있거나 시즌 중에는 쉴 수 없지만 그건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지 아닐까. 이런 회사 분위기와 남편의 패기(?) 덕분에 남편은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긴 연휴를 종종 갖곤 한다. 덕분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가격이 저렴한 비수기에 휴가를 갈 수 있어 꽤 많이 놀러 다녔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크고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그 전에는 남편만 휴가를 내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각자의 스케줄이 있어 다른 가족들의 일정도 맞춰야 하다 보니 남편이 긴 연휴를 갖는다고 해서 언제든 출발할 수가 없다. 이번만 해도 남편을 제외하곤 모두 빨간 날만 쉬는 터라 남편이 11일을 쉰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역마살이라고 해야 하나. 집순이인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답답해하는, 밖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이다. 남편이 11일을 여행도 못 가고 하루 종일 집안을 맴돌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런 경우 처음은 좋게 시작하지만 끝에는 결국 우리에 갇힌 사자처럼 짜증이 폭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하면 남편은 감정 컨트롤을 잘하는 편이고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지루함을 어쩌지 못해 옆에서 보는 이가 불안한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영락없이 놀아달라 떼 부리는 아이 같은 남편.


연휴 4일 차.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내일 바다나 보러 갈까?”

“난 내일 출근. 애들은 온라인 개학 중.”

“하루 땡땡이치면 안 돼?”

“난 자기처럼 못 쉬어. 딱히 월차가 있는 게 아니잖아.”

“오전 선생님한테 부탁하면 안 되나? 아직 개학 안 해서 바쁘지 않다며.”

“급한 일도 아닌데 괜히 남한테 피해주기 좀 그래. 그분도 스케줄이 있는데 갑자기 부탁드리는 것도 좀 그렇고. 그리고 방학도 줄어서 지금 쉬면 방학중에 보충할 시간도 별로 없어. 근무일수 맞춰야 해.”

“치.. 당신은 무슨 봉사직이 나보다 쉬지도 못하냐.”


보통은 속으로 궁시렁대며 입을 다물고 마는데 이번엔 나도 한 소리했다. 이 철없는 남편아~~


“당신은 정규직이고 나는 비정규직이라 그런다. 뉴스도 안보냐. 뉴스에서 맨날 나오지. 비정규직 어쩌고 저쩌고.. 그게 나야. 원래 정규직은 빨간 날 쉬고 월차도 있고 쉬어도 돈 나오지만 비정규직은 월차도 없고 쉬면 돈 안 나와.”


“ㅋㅋㅋ”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내 설움에 남편은 멋쩍은 듯 웃기만 했다. 남편의 말이 어떤 나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란 걸 안다. 처음 이일을 시작했을 때 ‘이제 밖에 나가 사람도 만나고 즐기라고’, 누구보다 응원을 해 줬던 남편이다. 단지 시간이 지날수록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에 내 자신이 작게 느껴지는 일이 종종 있다.

사실 생계가 걸린 비정규직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배부른 비정규직이다. 일을 안 한다고 해서 우리 가족이 굶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일하는 덕에 코로나 시대에도 잘리지 않고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쉬어도 월급이 나오는 사람과 쉬면 월급이 나오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피부로 느낄 때면 한숨이 나온다.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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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난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 거다. 비정규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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