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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Mar 19. 2020

남편이 옷을 뒤집어 벗어 놨다

슬기로운 부부 생활

부부는 참 이상한 관계의 사람들이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남편은 생생정보통이라던지 생방송 아침입니다 라던지 궁금한 이야기Y 혹은 실제상황 기막힌 이야기 그리고 홈쇼핑 채널을 좋아한다. 쉬는 날이나 혹은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소파에 누워 TV 채널을 돌리는 것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인 사람이다.


나는 수백 개의 채널 중 보는 것이 정해져 있다. 1번 MBC every, 3번 tvN, 15번 JTBC, 그리고 영화 채널인 21번, 29번, 76번 그 외 채널은 거의 보지 않는다. 정해진 채널 번호를 토끼처럼 깡충깡충 건너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TV를 보는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정규 방송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날도 그랬다. 부부 예능 프로에서 흔하디 흔한 부부갈등의 주요 소재, 빨래 내놓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옷을 벗어서 빨래통에 넣는 건 좋은데 왜 꼭 뒤집어 벗는건데? 양말도 뒤집어 넣고 옷도 뒤집어 놓고.. 그거 일일이 다 뒤집어서 빨려면 얼마나 귀찮은지 알아? 시간은 또 얼마나 더 걸리고?”

“그거 좀 뒤집어 놨다고 잔소리는..”

“아니.. 이 사람이..”


TV 속 부부의 시시한(?) 싸움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이 말했다.


“울 마누라는 저러지 않는데.. 옷 어떻게 벗어라 잔소리한 적 없는데.. 그치?”

“그럼~~~”

“근데.. 솔직히 난 양말은 뒤집어 벗어놓지 않는다. 난 항상 똑바로 벗어놓잖아.”

“그치. 양말은 안 뒤집어 놓지. 옷을 뒤집어 놔서 그렇지.”

“ㅋㅋㅋ 그래도 울 마누라는 저런 잔소리 안 하네.”

“그럼. 뭐 그런 걸로 잔소리하고 그래. 난 그냥 빨아서 그대로 걸어 놓으면 알아서 잘 입더구만.”

“아하..”

남편이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실 난 빨래를 뒤집어 빨면 안 된다는 것을 안 지 얼마 안 되었다. (오염물이 묻은 경우는 알아서 자진 신고(?)하기 때문에 내 생각엔 뭐 그리 큰 차이가 있나 싶기도 하다.) 결혼 전 친정 엄마께 살림을 배운 적도 없도 그다지 살림에 관심도 없었던지라 일부러 잡지나 인터넷 등에서 살림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 어르신들이 하는 방식대로 색깔 옷, 흰옷, 속옷, 수건을 구분해 빨고 울 빨래는 전용세제를 사용해 울코스로 돌리고 산소계 표백제 대신 과탄산소다를 사용하며 과탄산소다 사용 시에는 물의 온도가 60도 이상으로 맞춘다. 가끔 수건은 삶아주며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부는 곳에서 말려야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정도가 나의 빨래에 대한 상식이다. 그런데 간혹 TV를 보다 보면 옷을 빨래통에 넣을 때 뒤집어 놓았다던지 치약을 중간부터 짜서 쓴다던지 목욕탕 하수구에 낀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았다던지 하는 아주 사소한(?) 문제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최소한 우리 부부에겐  정말 사소한 문제다. 이 문제로 싸움을 한 적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고 꽤 오랫동안 사소한 일에 욱하곤 했었다. 결혼 후 남편은 좋게 미화하면 털털, 나쁘게 이야기하면 정리정돈을 못하는 나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었다. 육아와 집안일은 1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지적질은 얼마나 잘하던지.. 그러면 질세라 나도 이불이 구겨지게 눕는 남편에게 '기회는 이때다.복수다!!' 하고 잔소리 폭탄을 날리곤 했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보다 조금 더 함께 살아보니 이전엔 큰일이었던 것들이 사소하게 느껴지곤 한다. 전력을 다해 나에게 맞추라고 상대방을 닦달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대부분 부부 사이의 싸움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성격과 문화의 차이다. 국제결혼한 커플에게만 문화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문화의 차이가 있을 거란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차이를 인정하기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끼리도 지내온 환경에 따라 문화 차이가 난다. 문화 차이라고 하니 엄청 큰 것 같지만 치약을 중간부터 짜느냐 끝에서부터 짜느냐, 밥을 먹을 때 물을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 고추장에 양념을 하느냐 안 하느냐, 동그랑땡을 소고기로 하느냐 돼지고기로 하느냐 같은 것들이 모두 가정마다의 문화 차이이다.



적에는 20년, 많게는 30년 이상을 다른 문화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 어느 날 갑자기 부부가 되었는데 어떻게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문제가 없겠는가.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맞춰가는 것이 부부 아닌가 싶다. 좀 지면 어떠한가. 이겼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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