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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May 01. 2020

당신은 오금의 마블링이 예뻐.


지난주 남편이 무릎이 아프다며 물이 찬 것 같다고 했다. 순간 스치는 싸한 느낌. 노래 가사처럼 왜 슬픈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는지. 아파도 왜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내 몸인데도 잘 못 찾는 나와는 달리 남편의 자가진단시스템(?)은 최첨단이다.


몇 해 전 늘 그렇듯 허리가 조금 아프다던 남편은 집 앞 상가 한의원에서 침을 좀 맞아보겠다고 나간 지 10분 만에 돌아왔다.

“벌써 왔어? 문 닫았어?”

“나 아무래도 요로결석 같아."

"갑자기? 한의사가 그래?"

"아니. 가면서 인터넷 찾아봤는데 위치도 그렇고 소변에 피도 좀 보인 것 같고.."

"피? 혈뇨를 본 거야?"

"그 정도는 아니고 보일 듯 말 듯? 긴가 민가? 침이 아니라 비뇨기과로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렇게 찾은 병원에서 진단받은 병명은 남편의 말대로 요로 결석이었다.


그보다 훨씬 전에도 그랬다. 몸무게가 갑자기 빠지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하기를 며칠, 정기검진일이라 찾은 병원에서 담당의에게 본인이 병명을 이야기했다.

"저 아무래도 관절염으로 진행된 것 같아요."

남편의 말에 담당의는 두말 않고 류마티스내과로 담당과를 변경시켜 주셨고 그 날로 남편은 입원을 하고 건선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이런 최첨단 자가진단시스템(?)을 탑재한 남편이 무릎이 아프다며 2 주남은 정기검진일을 앞당겼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지만 상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버틸만하거나 걱정할 만한 상태가 아니라면 병원 정기검진일까지 기다렸을 남편이다. 혼자 갈 수 있다며 출근하라는 남편을 따라 병원에 갔다. 예약일보다 2주 당겨온 남편을 보고 담당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예약일보다 미리 오는 환자가 제일 무서워. 나빠졌다는 거잖아. 괜찮으면 미루거나 제 날짜에 올 텐데."

남편의 무릎을 만져보시더니 "주사기 2개? 잘하면 2개 반 나오겠네." 여기도 최첨단 시스템이네. 초음파실에서 초음파 검사 후 뽑은 물은 정확히 주사기 두 개 반이 나왔다. 55cc.



“오늘 물 뽑고 진통제랑 스테로이드 처방할테니 2주 뒤에 봅시다.”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남편은 잠시 긴장하는 듯 했다. 매주 자가주사를 맞고 두 달에 한 번 검사를 위해 피를 뽑는 남편은 바늘 공포증이 생겨버렸다.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애쓰지만 이만큼 살고 보니 나는 눈치가 빨라지고 남편은 숨기는 데 서툴러졌다. 수납을 하고 처치실로 이동했다.

"손 잡아 줄까?"

"아니 됐어."

좁은 처치실에는 의사와 환자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지만 혼자 들여보내는 것보단 눈이라도 맞춰주는 게 마음이 좀 놓일까 싶어 커튼 사이로 머리만 내밀고 지켜봤다. 처치하시는 의사분이 뭐라 안 하셔서 다행이었다.

“초음파로 확인하고 주사 꽂아 물 뽑을 껀데 아프실 수 있어요.”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한 무미건조한 의사 선생님의 말.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와 같은 의사는 현실에선 만나기 어렵다. 이해하면서도 늘 착잡하다. 무릎에 주사 바늘이 들어가고 나서야 남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 안 아프네. 선생님이 아프다고 하셔서 긴장했는데.. 왜 아프다고 겁주셨어요?”

안도감에 젊은 여자 선생님께 투정하듯 이야기하는 남편을 보니 ‘당신도 늙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치료가 끝나고 소독약이 옷에 묻을까 걱정하며 바지를 내리는 남편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제 괜찮은 척 할 시간이다.

"근데 선생님이 초음파 볼 때 보니까 자기 오금의 마블링이 짱이더라. 아주 예뻐. 1++ 이야."

"ㅋㅋㅋ 물 뽑은 거 사진 찍었어?"

"아니."

"왜? 찍어 두지."

"그럴걸 그랬나? 깜빡했다. 남은 거 기념으로 달라고 할까?”

"됐네. 그래도 다행이다. 입원하라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괜찮을꺼야.”



무릎에서 뽑은 주사기 하나의 물로는 원인을 알기 위한 검사를 하고 또 하나의 주사기는 의사 선생님 연구에 사용한다고 했다. 물론 환자 동의하에. 이제 2주 뒤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약이 늘어나지 않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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