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장마가 끝났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눅눅하고 습한 장마 기간은 좀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심지어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눅눅함이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비에 젖는 것이 싫어서다. 주관이 뚜렷한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옷이 젖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예민했다. 물가가 아닌 곳에서 슬리퍼 속 발이 젖는 것도 싫고 비에 옷이 젖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물은 좋아하는 편. ^^
결혼을 하고 살림을 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이 큰 그릇을 싱크대에서 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어떻게 닦지?'였다. 특히 시댁에서.. 제사에 사용한 큰 냄비를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싱크대에서 닦으려면 느릴 수뿐이 없는데 성격 급하신 시어머니는 이해를 못하셨다. 매번 혼나다 보니 이제는 물이 튀거나 말거나 빨리 닦는다. 아이를 낳고 나서 가장 큰 고민은(같은 맥락에서)'나에게 물 한 방울 튀지 않고 장난꾸러기 아이를 어떻게 씻기지?'였다. 이것도 역시 나의 완패. 여기저기 물이 튀어 축축해진 옷을 입고도 잘만 사는 내가 되었다.
내 몸이 마치 물먹는 하마인 듯 축축해지는 긴 장마 동안 가장 큰 고민은 마르지 않는 빨래였다. 땀에 젖은 옷과 하루에도 네다섯 장씩 나오는 축축한 수건은 금방 세탁 바구니에 가득 찼다. 제습기와 선풍기를 동원해 몇 시간을 말려도 늘 덜 마른 듯한 빨래들. 장마가 끝나니 반나절이면 뽀송해지는 빨래를 보니 앓던 이 빠진 마냥 개운하다.
장마라는 조건이 아니더라도 우리 집은 늘 빨래 바구니에 빨래가 차 있는 편이다. 수건, 흰옷과 색깔 옷, 속옷을 구분해 빨다 보면 빨래 바구니가 비는 날은 없다. 조금이다 싶던 빨래도 외출해 돌아온 누군가 샤워를 하고 나면 금방 차 버린다. 그런데 그저께 빨래 바구니가 비었다. 폭염은 힘들지만 빨래가 빨리, 잘 마른다는 장점이 있다. 2번 빨래를 돌렸는데 빨래 바구니의 밑바닥이 보였다. ‘내가 너의 바닥을 본지가 언제더냐.’ ‘무심코 지나쳤는데 바닥이 더러웠구나. 닦아야겠지?’ ‘그런데..... 귀찮다.’등등. 빈 빨래 바구니를 앞에 두고 감격(?)에 겨워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다 집안 모든 물건과 대화를 할 판이네. 나 그렇게 외롭진 않은데..’
그리고 어제. 하루 종일 뒷목 통증과 두통으로 집안일을 최소화했다. 딱 먹기만 함. 그 와중에도 빨래 바구니는..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비어있는 상태였다. ‘겨우 하루 세탁을 안 했다고 빨래 바구니가 가득 차겠어?’ 그리고 오늘 빨래 바구니를 열었다. 난 옷 딱 하나 벗은 것 같은데 빨래 바구니에는 빨래가 수북.
난 네가 화수분이었으면 좋겠다.
하룻밤 자고 나면 빨래 대신 돈이 이렇게 쌓여있었으면..
욕심내지 않을게.
반만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니?
언젠간 순식간에 수북이 차는 빨래 바구니가 그리울 날이 있겠지. 오늘도 우리 집 세탁기는 열나게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