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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Sep 10. 2020

며느리도 사람입니다 2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온 후 남편은 시아주버님과 통화를 했다. 지난밤의 일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나는 시아주버님이 남편 편인지 시어머니 편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명절 전에 들은 조카 이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듯했고 그 후의 결과를 보면 그 가족에게는 행복(?) 한 결과를 가져다준 선택이었다.







시아주버님과 통화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반성이라도 하는 걸까? 무엇을? 남편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살갑지 못하다 늘 시어머니는 불평하시지만 남편은 마음이 여리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잘잘못을 떠나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남편이었다.(물론 90%는 남편의 잘못이지만. 80% 가?? ^^) 그래서 우리의 부부싸움은 늘 길게 가지 못한다.



갈 때는 화가 나 연을 끊네 마네 한 남편이지만 막상 시어머니와 싸우고 나니(싸운 게 맞나 모르겠다. 남편은  한마디만 했으니까. 하지만 야단을 맞았다고 하기에도 이상하고 화풀이를 당했다고 하기에도 이상해 그냥 싸옴이라고 하겠다) 부부싸움을 했을 때처럼 마음이 편치 않은 것 같았다. 일주일 뒤 시어머니와 남편이 전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는 뻔했다. 시어머니 성격에 먼저 전화를 거셨을 리는 만무하고 남편이 먼저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부부싸움을 할 때는 남편의 이런 행동이 고맙고 옳다고 생각했는데 시어머니께 하는 걸 보니 화가 났다. 전쟁에 패해 포로가 된 백성의 기분이었달까.



"엄마, 지난번에 제가 죄송했어요."

라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 자리에 있다간 남편과 싸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짜증이 밀려왔다.

'뭐를 잘못했는데?'

'칼을 꺼냈음 무라도 잘라야 한다고 했는데 기세 등등하더니 이게 뭐지?'

'아들 기 꺾어놨으니 시어머니 앞으로 더 기세 등등 위세 떠실 텐데 그건 누가 감당하라고..'

오만가지 못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분명한 건 나는 이 싸움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뜻대로 싸웠고 화해했다. 그리고 나는 피해자가 됐다.

'그래, 착한 아들 둔 것도 시어머니 복이지.'

'하지만 난 아냐. 이제 착한 며느리는 관둘 거야.'

'효도하려면 당신이나 해. 난 안 해.'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의 마지막 발악이었을까?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며느리가 끊을 수는 없다고, 남편은 남편, 나는 나라고 쿨한 척 넘기려 했던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게 2주가 또 흘렀다.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내게 말했다.

"엄마한테 전화 안 드려?"

평소의 당당(?)하던 목소리가 아닌 뭔가 자신 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내가 전화드려야 해? 어머니가 전화하라셔?"

여전히 순진했던 난, 남편 입에서 안부전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시어머니의 사과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게 착한 며느리 역할을 요구하진 못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이가 없었다. 혹 남편은 그날 밤 시어머니의 말을 못 들었나 싶었다.

"당신은 못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대답했다.

"아냐. 나도 들었어."

더 어이가 없었다. 그 말을 듣고도 전화 안 하냐는 말을 한다고? 그 말이 그냥 당신들에겐 그냥 평범한 일상언어였던건가?

"다행이네. 당신이 못 들었으면 내가 시댁 가기 싫어서 시어머니한테 누명 씌운다 욕먹을 뻔했네."

시어머니는 이전에도 한 번씩 ‘왜 며느리들이 시댁에 오기 싫어하니?’ ‘왜 시에미를 싫어하니?’라는 식으로 나를 떠보곤 하셨다.

"어머니랑 전화하던데 어머니는 그날 일에 대해 뭐라셔? 당신이 맞다고 꾸짖으셔?"

"그냥 흥분하셔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어머니가 먼저 사과하셔?"

"아니. 내가 먼저 죄송하다고 하니까 당신도 그날 좀 흥분하셨던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당신이랑 어머닌 그렇게 서로 미안하면 끝날 일인지 모르겠지만 난 아냐. 나한테 전화하라 하지 마. 그만큼 했으면 됐어."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숨만 쉬었다.



남편에게 화도 났지만 남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딱 한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게 미안한 마음 한편으로 내가 모른 척 예전처럼 지내주길 바라는 마음이란 걸.. 나만 모른 척하면 겉으로는 다시 이전처럼 지낼 수 있을 테니까. 예전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남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또 2주가 흘렀다. 결혼하고 시어머니께 안부전화를 하지 않은지 5주가 흘렀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신기록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이삼일에 한 번씩 드리던 전화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이긴 했지만 한 달이나 전화를 안 한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유일하게 전화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편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밤 남편이 말을 꺼냈다.

"엄마한테 전화 안 드려?"

보아하니 내가 전화를 안 한다 시어머니께 한소리 들은 듯했다.

'전화 못 받아 죽은 귀신이 붙었나 이 집구석은 왜 맨날 나한테 전화 타령이야. 난 전화 싫다고. 거는 것도 받는 것도.'

"전화 안 드린다고 했잖아. 왜 자꾸 그래."

"그럼 계속 이렇게 살아?"

'이렇게 사는 게 뭔데?'

"명절에 간다고. 생일에 안부전화드린다고. 하지만 예전처럼은 전화 안 해."



다시 생각해도 그 날의 나는 참 멍청했다. 그날 나는 시어머니와 인연을 끊었어야 했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무슨 예의를 차린다고 명절에 방문하고 생일에 전화드린다고 한 건지. 누군가 댓글에 남긴 말이 생각난다. "지 팔자 지가 볶고 있네." 예의 없는 말이지만 맞는 말이다.



천하의 못된 며느리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그때는 그랬어야 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흐지부지 끝내는 것은 아니었다. 손절할 맘으로 확실히 짚고 넘어갔다면 지금 우리의 관계는 오히려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모두가 좋을 때나 통하는 말이다.



"어머니가 내가 전화 안 한다 뭐라 하셔? 그딴 며느리한테 전화는 받고 싶으시대?"

"..."

남편은 말이 없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

문득 궁금해졌다. 시어머니는 그 날 나에 대해 내뱉었던 말에 대해선 뭐라고 하셨을까.

"어머니가 나한테 한 말에 대해선 뭐라셔?"

"그니까.. 내가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니까.. 당신은 그런 적 없다고. 아들이랑 그런 거지 며느리한테 그런 말 할 이유 없다고.."


막장도 이런 막장은 없다.

싸울 때 나는 눈물이 먼저 나는 스타일이다. 너무 무섭고 너무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눈물만 흘리다 돌아선다. 그리고 돌아서서 '아..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라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렇게 반응이 느린 나지만 남편의 말에는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도 듣고 나도 들었는데 그런 적 없다고? 그걸로 끝이야?”

"엄마가 그날 화가 많이 나셔서 그렇지."

날카로운 내 목소리에 남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 자신도 그 말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린지 아는 듯했다.

"그러니까 왜 나한테 화가 나시냐고?"

이 싸움에서 사과를 받아야 할 유일한 사람은 나였다. 그런데 나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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