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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Sep 29. 2020

코로나 시대의 추석, 며느리의 명절증후군은 사라질까?


남편은 출근을 하고 아이들은 아직 기상 전인 아침.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예전엔 익숙한 네이버 뉴스만 봤는데 언제부턴가 다음도 함께 보게 된다. 공정해야 하는 게 언론인데 메인에 올리는 뉴스를 보면 속이 빤히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어디가 낫고 말고 할 건 없다.


오늘도 네이버 메인 뉴스를 쭈욱 훑고 다음으로 넘어오니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때가 때이니 만큼 명절과 며느리 이야기다.


“살다 살다 이런 추석은 처음.."코로나 핑계 대는 아내 얄밉다"


중앙일보 기사 제목이었다. 제목 한 번 참 임팩트 있게 뽑았다. SNS에 글을 올리며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글은 제목이 90% 라는 것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제목으로 선택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인데 그 제목 짓는 일이 참 어렵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명절 풍경을 쓴 기사다. 시부모님이 먼저 오지 마라 라고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며느리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그럼에도 오라고 해서 불안하다는 며느리의 이야기도 있다. 거기에 코로나 핑계를 대고 먼저 가지 않겠다 선언을 해서 얄밉다는 남편의 이야기까지.



명절 즈음이 되면 이런류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나는 명절 때만 되면 나오는 이런 기사가 과연 며느리의 명절 증후군을 덜어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기사를 보고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시부모님이라면 이미 예전에 조선시대 시집살이는 버리셨을 테고 그렇지 않은 분이라면 “세상에 이런 못된 며느리가 있냐.”며 한탄을 하시지 않을까. 바뀐다기 보단 골만 깊어지는 형태다.










우리는 이번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기로 했다. 남편이 명절에 본가에 가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재난문자가 오고 뉴스와 기사로 이번 설은 고향 방문하는 것이 불효자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던 몇 주 전, 남편이 시어머니께 안부전화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추석 땐 오냐?”

“OO인 시험이라 못 가고, 생각 좀 해보려고요. 고향 방문하지 말라니 다들 놀러 간다네요.”

“그러게 말이다. 너희도 오지 마라.”

“상황 좀 지켜보고 하려고요.”

“그래. 너희도 오지 말고 놀러 가던지..”

“애 시험이라니까 어딜 놀러 가요.”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의 대화가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추석엔 언제 올 건데?”

“OO인 시험이라 못 가고 저흰 전날 가요. 고향 방문하지 말라니까 다들 놀러 간다네요.”

“그러게 말이다. 그래도 너흰 와야지.”

“코로나 번질까 봐 걱정은 되지만 가야죠.”

“오기 싫으냐? 그럼 오지 마라.”



두 사람 모두 입으로는 ‘오지 마라, 지켜보자’라고 하고 있지만 남편은 ‘가야죠’, 시어머니는 ‘와야지’라는 말을 반대로 하고 있었다. 늘 이런 식인데 제삼자만 알아듣고 본인들은 모르는 것 같다.



그렇게 고향 방문 자제는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제 갑자기 남편이 이번 추석엔 가지 않겠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이유는 관광지라 사람이 너무 몰려 코로나가 걱정된다는 거였다. 그리곤 추석 지나고 가겠다는 남편의 말에 한숨이 나왔다.

‘안 가면 안 가는 거지 추석 지나고는 뭐지?’

대부분 남편의 결정은(특히 막히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맞는 편이라 나는 남편의 결정에 크게 토를 달지 않는다. 토를 달아도 어차피 듣지 않기도 하지만.. ^^ 하지만 이번에는 아닌 것 같아 조심스레 토를 달았다.



“저기.. 추석에 가는 건 제사 때문인데 지나고 가는 건 아닌 건 같아. 어차피 10월 말에 아버지 제사 때문에 가야 하는데 추석 지나고 뭐하러 가. 괜히 가고도 좋은 소리 못 들어. 그럴 거면 그냥 추석에 다녀오자.”



안 갈수만 있다면 나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시댁과 손절한 게 아닌 이상 다녀오는 것이 맘이 편하다. 맘이 불편한 것보다 몸이 좀 힘든 게 100배는 낫다. 아들은 안 간다는데 며느리가 가자고 한다면 시어머니는 믿으실까?



아이들 포함 듣는 사람 모두 이해가 안 되는데 남편은 자신의 결정이 이상한 점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남편의 명절 집콕 선언을 듣는 순간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음성 지원되는 기분이었다. 남편이 사고(?)를 쳤으니 시어머니와 형님께 전화드려 죄송하다 사과는 내가 해야 하는 일. 아니 내가 왜!!!!



심호흡을 하고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그 날 이후 아직도 난 시어머니께 전화드리기 전 수없이 망설이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각오는 했지만 10% 확률에 도전했는데 역시나 시어머니는 기분이 별로 셨다. 수화기 너머 시어머니 목소리톤이 이미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머니 이번 추석에 못 가서 죄송해요.”

“어쩔 수 없지. 코로나 때문에 다들 난리니. 오기 싫으면 오지 마라.”

에휴.. 사족을 안 다셨으면 죄송한 맘이 더 컸을 텐데..



“가기 싫은 게 아니라 관광객이 몰린다고 하니 애들 아빠가 걱정이 되나 봐요.”

시어머니나 남편이나 모두 기저질환자다. 기저질환이 없는 우리는 표면적으로나마 괜찮지만 고령의 시어머니나 남편은 코로나에 취약한 사람들이라 우리 모두 걱정을 하고 더 조심하고 있다. 아들이 오지 않겠다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서운한 맘을 숨기지 않는 시어머니가 한 말씀하셨다.



“그래도 여긴 코로나 환자 한 명도 없다.”

ㅋㅋㅋ 와도 된다는 말씀을 에둘러하시는 시어머니. 못살아. 시어머니 맘이 이런 데 남편은 뭐가 괜찮다는 건지. 하나도 안 괜찮구먼. 서운한 맘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어머니의 화법은 들어도 들어도 기분이 별로다.



“안전하게 추석 지나고 간다고 하네요.”

다 죽어가던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커지셨다.

“추석 지나고 뭣하러 와!! 어차피 아버지 제사가 코앞인데.”


ㅋㅋㅋ 그러니까요. 










그리고 오늘 나는 전화를 두 통 더 했다. 형님께 한 통, 내 대신 고생하는 조카에게 한 통. 앞으로 추석까지 몇 번이나 죄송하단 전화를 더 해야 할까? 추석 연휴 내내 밥은 또 뭘 해 먹고? 코로나 시대의 추석,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K - 며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의 명절 증후군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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