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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Nov 12. 2020

 D-2, 아들이 머리를 밀었다.


어제 아들이 삭발을 했다.

일하는 데 아들이 카톡을 했다. 머리를 밀려고 하는데 괜찮냐고. 별 걸 다 묻네 싶었는데 아들이 말했다.


아들 : 나 오늘 머리 밀어도 되나?

 : 맘대로 해. 근데 갑자기 왜? 아직 하루 남았잖아.

아들 : 그냥. 갑자기 밀고 싶어서.

 : 그럼 밀어.

아들 : 근데 아빠 괜찮나?

 : 아빠가 왜? 아빠도 같이 민데?

아들 : 아니. 아빠가 나 머리 미는데 같이 가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 그래? 엄만 첨 들음. 아빠한테 카톡해 보던가. 근데 상관있으려나?

아들 : 괜찮겠지?

 : ㅇㅇ  이따 친구들 만난다며?

아들 : 응. 친구 만나서 같이 가려고.



남편과 단둘이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 부자 사이가 많이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 아직 아들은 아빠가 어려운가 보다. 남편에게 바로 이야기하면 될 일도 꼭 나를 거친다. 그건 딸도 마찬가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처음엔 남편의 병이 문제였다. 우울증과 예민할 때로 예민해진 남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눈치 보며 살았던 시간들이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다. 거기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남편에게 결정을 미루는 내 우유부단함이 아이들과 남편의 거리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선 지나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노력은 해봐야겠지.









오후 6시. 현관에 불이 켜지며 아들이 들어왔다.


"으악.. 흐흐흐흐 너 뭐야?"


 빡빡이가 된 아들의 머리를 보니 웃음이 터졌다. 반들반들해진 머리를 멋쩍게 쓰다듬으며 아들도 웃었다.


"너 그동안 머릿발이었던 거야?"


태어나 처음으로 본 빡빡이가 된 아들의 모습은 낯설다는 느낌을 넘어 그저 웃음만 나왔다. 백일 즈음 아기 머리를 밀면 숱이 많아진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에도 나는 아들의 머리를 밀지 않았다. 딱히 밀지 않을 이유도 없었지만 밀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들은 신생아 때부터 숱이 엄청 많았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입대일이 가까워지며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있었는데 빡빡 민 머리를 보니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몰려왔다.


‘우리 아들이 어느새 이렇게 자라 군대를 가는구나. 우리 아들 군대 갈 나이가 되면 통일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 먼 시간을 이렇게 빨리 달려왔구나.’


남편에게 아들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남편 : 헐, 원래 저렇게 빡빡 미나? 해병대 가는 줄

나 : 6미리나 9미리로 미는데 자긴 좀 길게 9미리로 밀었대.


그리고 잠시 뒤 남편이 보낸 사진 한 장을 보고 우리는 모두 웃음이 터져 버렸다.


남편 : 완전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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