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무서운 것

by 꾸미


아이 학교에 확진자가 나왔단 소식을 들은 건 지난주 수요일이었다. 수능을 위해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원격수업으로 전환이 되기 전날 나온 확진자 소식에 학교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출근길 카톡에 뜬 딸의 “엄마”라는 두 글자에 또 어디가 아픈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카톡창을 열었다.


“2학년에서 확진자 나왔어.”

“너네?”

“어”

“몇 반?”

“몰라. 손 떨려.”

“괜찮아.”

“귀가래.”

“밀접접촉자 안내는?”

“우리 반은 3명.”

“집에 가서 손 깨끗이 씻고 얌전히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확진자 발생 안내 문자에도, 주변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 같았던 코로나가 성큼 내 옆으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아이에게는 괜찮다고 했지만 ‘혹시?’라는 생각에 나 역시 손이 떨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져 무엇부터 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이 학교이다 보니 '혹시나'가 더 크게 다가왔다. 남편에게 상황을 알리고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출근을 해도 되는지 확인을 했다. 3번의 담당부서로 연결 후에(이 시국에도 한 번에 안내가 안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현재 따로 문자를 받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답변을 받고 출근해 보건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드렸다. 그리고 다음날 밀접접촉자로 검사를 받은 74명의 음성 결과 소식을 받을 때까지 만 하루, 수많은 '만약에'를 상상하느라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코로나 초기 방역지침대로라면 아이 학년 전체가 밀접접촉자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최근 방역지침이 느슨해지며 밀접접촉자 기준이 바뀌었다고 한다. 1차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검사를 받은 사람 중에 양성이 나온 경우에만 학년 전체가 검사를 받는 식이다. 밀접접촉자 전원이 음성이 나온 것은 정말 다행이지만 아이 말을 들어보면 과연 다른 확진자가 없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복도에서, 급식실에서 학교 안 어디에서건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아이가 74명뿐이었을까? 최초 확진을 받은 아이도 무증상이었다고 하니 검사받지 않은 아이 중에 누군가는 또 무증상 감염자일 수 있는 확률이 있지만 왠지 정부에서는 더 이상 감염자를 찾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뉴스에서 들을 때와는 다른 방역의 헛점이 보였다. '이래서는 막을 수가 없겠구나.', '지금의 확진자수는 많은 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일 코로나 뉴스를 접하면서 불안했던 마음이 현실이 된 기분이랄까. 안전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과연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온 가족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코로나가 사라지기를 기다리지 않는 한 언제 어디에서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요즘이다.








한바탕 난리를 겪은 지 며칠이 지난 어제, 원격수업으로 집에 있는 딸과 점심을 먹는데 핸드폰을 보던 딸이 말했다.


"잉? 엄마 부산은 3단계래."

"그래?"

"아니다. 3단계에 준하는인가?"

“부산도 장구교실발 확진자가 150명 넘는다고 하더라.”

"트위터 친구가 독서실 다니는데 확진자 나와서 밀접접촉자 결과 기다리고 있대."

"아이고, 거기도 난리구나."

"친구는 돈 낸 거 아까워서 잠만 자고 왔다는데. 아니다. 물도 먹었다네."

"물만 먹었을까? 숨도 쉬었잖아."

"ㅋㅋㅋ 친구가 결과 기다리는데 불안하다고."

"그렇겠네."


며칠 전 우리가 겪은 그 공포가 생각이 났다. 아이는 밀접접촉자는 아니었지만 한 다리 건너면 접촉자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 친구와 함께 다니는 친구가 아이와 같이 다니는 친구이니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력을 생각한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 그 우리 학교 최초 확진자 애 말이야. 완치되어서 학교 나오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무슨 소리야? 왜? 애들이 뭐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못된 애들이 꼭 있잖아.”

“그렇긴 하지. 신문기사에도 그런 이야기 나오긴 하더라.”

“다시 학교에 나오면 그 반 친구들이랑 어색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 친구 잘못이 아니잖아.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독서실 간 게 잘못인가? 하지 말라는 행동 해서 코로나 걸린 거면 욕먹을 만하지만 그 친구는 그런 거 아니잖아. 다들 그거 알 거고. 괜찮을 거야.”

“응. 근데 있잖아. 그거 다 아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 친구도 어색할 것 같고, 만일 나랑 친한, 같이 다니는 친구가 확진이 되고 완치가 돼서 다시 나랑 같이 다녀야 한다고 한다면 예전처럼 손잡고 떡볶이 같이 먹고 할 수 있을까 하는..”

“...”

“그냥.. 그러면 안 되는 거고 그 친구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 친구한테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생각을 하니까 그렇더라고.”



아이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코로나 초기부터 가장 두려웠던 건 내가 코로나에 걸린다는 것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다른 이에게 코로나를 옮길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통증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은 "당신 때문에.."라는 비난이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신문 끄트머리에 작게 나오는 코로나 블루나 코로나 후유증, 코로나 완치자들을 향한 따가운 시선과 같은 기사들을 볼 때면 코로나 이후에 오는 것들이 어쩌면 코로나보다 오래, 더 무서운 공포로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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