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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n 20. 2021

남편의 뜻밖의 고백(?)


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거실에 함께 사는 세 식구가 마주했다. 아이들이 크면 함께 살지만 같이 밥을 먹는 시간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든다.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함께할 이야깃거리도 줄어든다. 기껏해야 TV 프로그램 이야기인데 요즘 애들은 TV보단 SNS를 통한 그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이것도 공통된 부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아이와 연예인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면 한동안 대화는 단절되기 일쑤.



그날은 아들 수능 치르고 떠난 첫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늘 그렇듯 어떻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 그 발단은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건 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추억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지만 ‘나쁜’이라는 감정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 해외여행지는 홍콩이었다. 농담처럼 지나가는 말로(사실 힘내서 공부하라는 의미로)”너 수능 끝나면 해외여행 한 번 가보자.”했는데 그 말을 남편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당사자도 가만히 있는데 왜 남편이 흥분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지만 아무튼 아들의 수능이 끝나자마자 남편의 채근이 시작되었다.

“어디로 갈 거야?”

‘진짜 가게?’

“돈은 모아놨어?”

‘무슨 돈?’

동상이몽도 이런 동상이몽이 없었다.

한 번 떠보는 말이 아닌 진심어린(?) 남편의 채근에 우리는 급하게 해외여행을 준비했다. 그때까지 나는 7-8월 여름 휴가철만 여행 성수기인 줄 알았는데 1월도 여행 성수기란 걸 처음 알았다. 덕분에 비행기 요금부터 숙박료까지 우리가 다닌 여행 중에 가장 비싼 비용을 지불했다. 그런데 도착하는 순간부터 눈물바람이었으니 우리의 첫 해외여행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이었다.



 : 난 홍콩은 별로 다시 가고 싶지 않아. 음식도 안 맞고.. 딤섬은 가끔 생각나긴 한다.

남편 : 그때 엄마가 맛집 다 알아봤는데 아파서 하나도 못 먹어서 그렇지. 맛집 갔으면 다 맛있었을 꺼야.

 : 애 정시 준비하는데 당신은 자꾸 맛집 찾아놓으라고 하고.. 내가 아주 그냥..

 : 우리 첫날 밤에 아주 난리였잖아. 엄마 타미플루 부작용와서 토하고 오빠랑 나랑은 덕링 타고 멀미하고.. 아빠는 건선때문에 힘들고.

남편 : 와~~  그때 엄마 죽 사다 준다고 마트 찾아 거짓말 안하고 그 추운데 1시간을 헤매서 샀는데 호텔 옆에 그 마트가 있는 걸 보니까 짜증이 확 나더라.

 : 엄마가 안 아팠으면 미리 멀미약 먹으라고 했을 텐데..

 : 우린 배 타고 ‘맞다’하고 먹었잖아. 게다가 얼마나 추운지.. 그 추운데 서비스라고 찬 콜라를 주는 건 뭐야.

 : 암튼 그날 밤은 다들 난리였다. 오빠는 자다가 일어나서 여행 취소하고 집에 가면 안 되냐고 하지, 아빠는 힘들고 속상해서 울지, 엄마는 누워있어도 하늘이 빙글빙글 돌지.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집에 못 돌아갈까봐 엄청 무섭더라고. 병원도 못 가고 객사하는 줄 알았다.

남편 : 난 그날 밤에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는 거야. 근데 그 날 이후로 지금도 가끔씩 자려고 누우면 숨이 안 쉬어진다.


뜻밖의 남편의 고백(?)에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래서 그랬구나.’

먼저 자러가는 남편은 늘 방문을 활짝 열어 둔 채 침대에 누웠다. 거실의 불빛과 우리들의 말소리에 시끄러워 잠을 이루지 못할까 문을 닫을라치면 괜찮다고 한사코 방문을 닫지 못하게 했다.


 : 지금도 그래?

남편 : 가끔?

 :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남편 : 그 정도는 아니야. 아주 가끔 그러는건데 뭐.


남편의 고통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마음의 병에는 약도 없지만 완치도 없다. 병의 씨앗이 항상 마음 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 언제든 기회만 생긴다면 싹을 틔워 온 마음을 삼켜버리려고 하기에 마음의 병은 치료 방법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누구나 마음의 병을 조금씩 가지고 있지만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병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병이 그러하듯 마음의 병도 표면으로 나타나야 알 수 있고 병이란 걸 인지한 후에는 암처럼 치료가 쉽지 않은 아주 고약한 병이다. 남편은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혼자 아프고 혼자 버텨내고 있었다.








가끔 아니 종종 나는, 남편의 섬세함에 감동하고 나의 둔함에 놀란다. 자라온 환경 때문에 나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투에 예민한 편이다. 목소리톤이나 말투만 조금 달라져도 ‘화난 건가?’ ‘내가 뭘 잘못했나?’ ‘뭐가 잘못됐나?’라는 생각을 먼저 하곤 한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눈치가 빠르다’라고 했고 나 역시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았다. ‘눈치가 빠르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의 마음을 남다르게 빨리 알아채다’라고 나와 있다. 내 경우에는 반만 맞는 말인 것 같다. 나의 ‘눈치 빠름’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감정을 빠르게 알아채지만 그 감정이 나를 향하는지, 나에게 피해를 주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참 쓸데없고 이기적인 눈치 빠름이다. 반세기를 함께 해 왔음에도 나는 나 자신을 여전히 잘 모른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어쩌면 23년을 함께 산 남편이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도 남편은 방문을 열고 잠자리에 든다. 잠깐 동안 방 안에서는 남편이 보는 유튜브 방송 소리가 들린다. 유튜브 방송 소리가 잠잠해지면 나는 문 앞으로 조용히 다가가 얕은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방문을 살짝 닫는다. ‘오늘도 무사히 잠자리에 들었구나’하는 안도와 함께. 고작 여기까지가 나의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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