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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l 15. 2021

사실은 안 괜찮은 거였어


얼마 전 2학기 전면 등교 방침이 정해지고 교직원에 대한 화이자 백신 접종 안내문을 받았다. 나는 학교에서 일을 하지만 교직원이 아니다. 용역업체에서 파견되어 청소를 담당하던 이모님마저 재작년 교육청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직접 고용을 했지만 나는 아니다. 완벽한 사각지대이며 깍두기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교직원 전체’라는 문구의 안내문을 받을 때면 내가 포함되는 건지 아닌지 늘 헷갈린다. 발송하는 담당 부장님이 구분을 해 안내문을 발송하시면 좋은데 해마다 담당 부장님이 바뀌는 데다 그분들도 우리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일단 전체 발송을 하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가 낄 자리인지 아닌지는 짬으로 파악해야 한다. 거의 대부분 좋은 것은 나를 빼고 교직원이고 귀찮거나 쓸데없는 것에는 나를 포함 교직원인데 이번 백신 접종은 교직원이 아닌 학교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으로 그 범위가 정해져 방과 후 강사, 방역 요원까지 포함되는 덕분에 나까지 혜택을 받게 되었다.






40대인 나는 남편과 함께 백신 접종 순위에서 맨 뒤다. 맨 뒤여서 불안하다는 마음보다 다행이다 싶었다. 맞긴 맞아야 하겠지만 아직 백신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흐름을 거스를 만큼 자기 주관이 확실한 것도 아니다. 단지 아직도 기약 없는 40대 백신 접종이 불안해 잔여백신을 찾거나 9월 모평에 허수로 지원해 미리 맞을 의향까지는 없다는 정도가 우리의 주관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내가 먼저 백신 접종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게 뭐 대수냐고? 그러니까..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우리 가족은 모두 후순위 백신 접종 대상자다. 1020세대 아이들과 40대 부모. 좋게 생각하면 건강하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 타이밍에 20대 아들은 군대에 가 있고 10대 딸은 고 3이다. 그리고 40대 봉사직 아줌마는 학교 근무자라는 혜택을 받았다. 뭐 이런 우연이.. 그 탓에 정작 가장 외부와 접촉이 많아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이 높고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어 감염 시 가장 위험한 남편만 언제 접종할지 모르는 사각지대에 놓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일까지 희망 여부를 알려달라는 담당자의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학교에서 백신 접종하라고 나왔는데 어쩌지?

뭘 어째? 맞아.

자기만 남잖아. 희망자 신청이라고 하니까 담에 자기랑 맞아도 돼.(사실 강제다. 안 맞으면 윗분에게 엄청 눈치 받을 거다)

됐네. 한 사람이라도 빨리 맞아야지. 대상은 맞는 거야?

응. 그건 확인했어. 아마 2학기 전면 등교 때문에 모두 맞히나 봐. 영어쌤도 맞으라고 나왔대.

잘됐네. 무조건 맞는다고 해.

9월이면 40대도 맞을 수 있다는데 그때 자기랑 같이 맞아도 돼.

됐네. 난 괜찮으니까 맞는다고 해. 알았지?

ㅇㅇ


남편은 괜찮다고 했지만 난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외계인이 침략해 지구가 멸망하는 영화에서 안전한 방공호로의 입성을 남편만 빼고 선택받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지난 화요일, 접종 예약을 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백신은 피하고 싶다며 8월에 예약을 하는 선생님들과 달리 나는 가장 첫날 가장 빠른 시간에 예약을 했다. 이왕 맞기로 한 거 굳이 날짜를 미룰 필요가 없다는 남편이 가장 빠른 날로 예약을 잡아 주었다. 이미 확보된 백신 물량이어서 그런지 뉴스에서 보는 예약 마감 사태는 없었다. 예약 다음 날 출근한 내게 남편이 카톡을 보내왔다.



난 오늘부터 잔여백신 전쟁이다!!!



남편~~ 괜찮다더니 안 괜찮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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