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형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저녁 먹었는가요~^^
7월 어머니 팔순 때 별도 의견 있나요?
좋은 의견 있으면 연락 주세요
올 게 왔구나 싶었다.
형님의 카톡에 남편과 상의해보겠다고 답을 드린 후 머릿속이 복잡해 며칠 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아마 시어머니의 팔순 생신이 지나야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형님은 이미 작년 추석부터 - 그러니까 1년 전부터 - 올 시어머니 팔순 잔치 때문에 걱정을 하셨다. 환갑도 칠순도 못하셨는데 팔순마저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하면 분명 시어머니가 두고두고 원망을 하실 거라는 것이 형님 고민의 이유였다. 형님의 생각에 우리 모두 동의하는 바이지만 딱히 답이 없다 보니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고 있는 상황이다. 시어머니의 환갑은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칠순은 시어머니가 생신 직전 인공 관절 수술을 받으신 탓에 조용히 지나갈 수뿐이 없었다. 내심 서운하셨겠지만 인공 관절 수술 날짜를 그렇게 잡으신 것은 시어머니 본인이셨기에 시어머니도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을 하실 수 없었다. 사실 말이 조용히지 내 입장에서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시험 기간인 조카들 때문에 정신이 없으신 형님을 대신해 그해 시어머니 생신상을 혼자 차려야 했다. 한참 며느라기 시절을 보내던 시기라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다양한 음식 레시피를 찾고 오븐까지 들고 내려가 시어머니 생신상을 차렸었다. 시어머님이 예상치 못했던 시이모님네까지 초대하신 탓에 준비한 음식이 모자란 건 아닌가 쩔쩔매며 음식을 해대느라 한여름 혼자서 땀을 뻘뻘 흘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순을 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것은 시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칠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가 원하시는 칠순, 팔순은 잔치다. 예전 자식을 많이 낳던 시절, 자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친인척을 초대해 풍악을 울리며 음주가무를 즐기는 잔치가 시어머니가 원하시는 칠순이고 팔순이다. 지금도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칠순이나 팔순 잔치를 하는 집들이 많았을 것이다. 문제는 시댁은 형제가 딱 둘이고 그중 누구도 그런 끼(?)가 없다는 것이다. 척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 척조차 못하는 사람들이니 시어머니를 제외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잔치라는 것이 두려운 행사다. 코로나로 인해 잔치를 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작년부터 시어머니 팔순을 걱정하셨던 형님과 딱 한 번 팔순 잔치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형님은 3가지 정도 방안을 말씀하셨었다.
첫 번째는 시어머니 친구분들을 모아 하루 버스 관광을 시켜드린다는 거였다. 형님과 시아주버님이 하루 희생(?)을 하면 가능하지 않겠냐는 말씀이었는데 이건 코로나가 잠잠해졌다는 가정하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7월 시어머니 생신 때쯤이면 시어머니 또래분들은 모두 화이자로 2차 접종까지 마치신 상태긴 하지만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라는 코로나 방역 수칙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혹여 조치가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남들 보기 좋지 않은 잔치가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패스~~
두 번째는 가족끼리 여행을 간다는 것이었다. 형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나머지 식구들 모두 식겁을 했었다. 유일하게 안 놀란 사람은 울 아들. 군대에 있어 좋겠다 쨔샤. 우리가 놀란 이유는 시어머니 팔순 여행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70% 는 싸움으로 끝날 여행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가족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른 이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배려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보니 배려를 하는 사람들은 함께 하는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의 일반적인 희생과 배려가 있어야지만 유지되는 관계는 가족이어도 지속되기 어렵다.
세 번째는 가족끼리 조촐하게 식당을 예약해 밥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고 시어머니가 가장 원하지 않으실만한 방법이지만 문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건 순전히 올해 우리 집 사정 때문이다.
군대에 가 있는 아들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의경이다 보니 부대에서 후임을 받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전역자들이 줄줄이 있어 근무를 서는 인원이 나날이 줄어들다 보니 7월 말 부대가 통폐합될 때까지 전원 외박이 중단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외박, 외출이 육군보다 많아서 꿀이라는 의경인데 올해는 코로나와 폐지 수순으로 인원이 줄어 외박, 외출이 금지되는 날이 더 많다. 꿀 빠는 의경이라는 말도 옛말이다. 지금은 힘들다.
게다가 두 달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는 남편의 병원 예약일이 시어머니 생신 전 주 토요일이다. 거리가 있다 보니 생신 당일인 평일에는 찾아뵐 수가 없어 보통 전 주 주말에 가는데 하필 병원 예약이 잡힌 것이다. 남편 담당의의 주말 진료는 매달 둘째 주 토요일이고 생물학적 제제 주사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예약일을 바꿀 수가 없다.
딸은 고삼 수험생이다. 주말에도 학원 수업이 있고 7월은 마지막으로 생기부를 채우는 시기라 각종 경시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코로나로 생기부의 항목들이 완화되기는 했다지만 기껏해야 대외 활동이 줄어들었을 뿐 교내 활동들은 어떻게든 채우게끔 하고 있다. 아마 마지막 경시대회는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에게 몰아주기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생기부의 한 줄을 채우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깟 한 줄이 뭐라고.. 근데 그깟 한 줄이 없어 자소서에 스토리를 만들지 못하기도 한다. 모든 수험생이 그렇겠지만 마지막까지 리듬을 잃지 않고 긴장을 유지해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운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닌 다시 해도 이 이상은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 집 상황이 이러하니 그동안 형님께 먼저 시어머니 팔순에 대해 여쭤볼 수가 없었다. 형님 입장에서도 우리 집 사정을 뻔히 알지만 우리 가족이 빠진 상태로 시어머니 팔순을 치를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신 듯했다. 이럴 때 시어머니가 먼저 나서 상황이 이러하니 어떡하냐며 서운하신 마음을 담아주시면 감사한데 내가 아는 한 시어머니는 그러실 분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도 시어머니는 서운해하실 것이다. 늘 그렇듯 우리의 최선이 시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최선이 아니기 때문에.
문득 돌아가신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쉰일곱에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 유방암 수술 1년 만이었다. 친정아버지야 그런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시는 성격이라 그렇다 치고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칠순이나 팔순 잔치를 시어머니처럼 원하셨을까? 어쩌면 내가 이렇게 자식을 잘 키웠다고, 자식들에게 대접받고 살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 원하셨을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친정 엄마였다면 싹퉁머리 없는 내가 나서 무리한 요구를 차단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친정엄마는 서운해하셨겠지만 최소한 친정 올케들은 우리 형님 최고라고 하지 않았을까. 다 부질없는 생각들이다. 그나저나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우리도 시어머니도 모두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