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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n 14. 2021

나에게 100만 원이 생긴다면?


한수희 작가님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라는 책에서 만일 나에게,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돈 100만 원이 생긴다면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글이 나온다. 20대였다면 원하는 책을 사고.... 했을 텐데 가족이 있는 지금은 그런 돈이 생겨도 가족을 위해 저금하고 동네 빵집에서 소확행을 느낀다는 작가님.



책을 읽으며 잠시 나도 행복한 상상을 해봤다. 만약 나에게도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100만 원이 생긴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만을 위한>이다. 아이가 갖고 싶어 했던 노트북을 산다거나, 15년을 입어 소매가 헤진 남편의 캐시미어 코트를 새로 산다거나, 각종 사은품으로 받은 것들을 쓰느라 짝이 맞지 않는 주방 살림을 뽀다구 나는 고급 브랜드로 바꾼다거나 하는 것 말고.. 오직 나만을 위해 100만 원을 써야 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먼저 고급 미용실에 가서 예쁘게 머리를 만져야겠다. 일회성 말고 꾸준히.. ^^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에 의해 나는 외모 가꾸기에 별 관심이 없다. 외모를 가꾼다는 것은 우선 돈이 있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하고 거기에 외모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엄마가 사다 주는 시장표 티셔츠를 입고 엄마의 단골 미용실에서 아줌마 파마를 했다. 엄마가 다니시던 미용실 원장님은 단돈 2만 원에 숱이 남들의 3배는 되는 내 머리를 뽀글뽀글 말아주셨다. 그 당시만 해도 동네 미용실의 파마 손님은 대부분 아줌마들이었기에 미용실 원장님의 파마 기술은 딱 두 가지. 2대에 걸쳐 오는 젊은 사람은 굵게, 나이 든 사람은 촘촘히 말아 뽀글뽀글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비슷하겠지만 예전 엄마들은 파마에 몇 십만 원 돈을 들이는 것을 아까워했다. 그래서 엄마들의 요구사항은 늘 똑같았다. 싸게 오래도록 파마가 풀리지 않는 것. 그렇기에 동네 미용실 원장님은 신기술을 연마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젊은 사람이었지만 머리가 워낙 뻣뻣해 파마가 남들보다 금방 풀린다는 이유로 늘 세게 파마를 말았다. 숱도 많은 데다 파마까지 세게 한 나는 파마를 한 뒤 며칠은 미스코리아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사자머리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대두인데 더 대두가 되어 버리는.. 아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덧붙이자면 헤어스타일만 미스코리아라는 점. ^^


대학교를 졸업하고 딱 한 번 대학가에 있는 디자이너 이름을 단 미용실에 간 적이 있다. 당시 파마 가격이 10만 원. 그것도 조조할인 가격이었다.  뭐 지금은 이 정도면 일반적인 파마 금액이지만 벌써 20년도 전이니 10만 원은 꽤 비싼 금액이었다. 비싼 금액에 주눅 들어하며 미용실 아니지 헤어숍 문을 열고 들어서니 수습생 같은 젊은 직원분이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걸 하러 오셨나요?"

"자르고 파마 좀 하려고요."

"처음이신가요? 찾으시는 디자이너분이 계신가요?"

'첨인데 찾으시는 디자이너따위 있을 턱이 없잖아.'

"아뇨."

"그럼 잠시 앉아 계시면 디자이너분께 안내해 드릴게요."

제일 한가한 그러니까 실력이 없는 초보 미용사가 올 것 같아 불안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으니 달리 방도도 없었다. 잠시 뒤 젊은 남자 미용사가 웃으며 다가왔다.

'아.. 괜히 왔다.'

인사를 하는 남자 미용사를 보며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늘 아줌마들만 있는 미용실에서 뽀글이 파마만 해오다 갑자기 낯선 남자가 내가 원하는 머리 모양이 무엇인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동네 미용실에서는 "파마 해주세요." 한마디면 됐는데 여긴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며 일주일 만에 풀려버려 다행(?)인 파마를 했다. 그 후 본전 생각과 상경한 촌닭처럼 우물쭈물하는 것이 싫어 동네 미용실에서 뽀글이 파마만 해왔다. 하지만 100만 원이 생긴다면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는 않지만 예쁜 호박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다음으로는 책장 가득 책을 사 모으고 싶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나의 취향 중 하나가 나는 다독가가 아닌 적독가라는 사실이다. 서점을 좋아하고 도서관을 좋아하는 것은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책들이 좋아서다. 물론 책을 읽는 것도 좋아는 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좋아하는 마음이 30이라면 책장 가득 꽂혀 있는, 언젠간 읽을 책들을 보며 좋아하는 마음은 70이다. 읽은 책과 언젠가 읽을 책들로 가득 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책을 꺼내는 대부호의 서재.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서점 주인은 망하기 딱 좋은 직업이라던데 망할 걱정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다음으로는 베고니아, 미니 바이올렛, 제라늄, 수국, 신닌기아.. 갖고 싶은 식물들을 모두 사 모으고 싶다. 죽이는 것(절대 일부러는 아님)과 살아남는 것의 비율이 반반도 안 되는 똥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이 주는 위로는 포기할 수가 없다. 애지중지 키운 정성에도 불구하고 맥없이 떠나버리는 식물을 볼 때면 ‘난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인가 봐.’라는 좌절감이 들어 가드닝을 포기하고 싶다가도 베란다 구석진 자리에서 살아남아 아름다움을 뽐내는 식물을 보게 되면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탓에 다시 베란다를 식물로 가득 채우고 만다. 언젠가는 식물들로 가득한 온실을 만들어야지. 그곳은 분명 머무는 것만으로도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신비한 장소가 될 거야.





그다음으로는 나만의 노트북을 한 대 사고 싶다. 뭐 지금이라도 살 수야 있겠지만 왠지 지금은 낭비한다는, 죄책감(?) 같은 마음이 들어 선뜻 노트북을 사지 못하겠다. 전문 작가도 아니고 그저 SNS에 글이나 몇 자 끄적이는데 꼭 나만의 노트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스마트폰으로도, 아이폰으로도, 집에 있는 3대의 노트북 중 아무거나 골라잡아도 글은 쓸 수 있지만 왠지 나만의 노트북이 갖고 싶다. 결혼 후 가장 큰 변화가 내 소유의 물건이 자꾸 줄어든가는 것이었다. 언젠가 부부싸움 후 가출(?)을 결심하고 짐을 챙기는데 내 소유의 물건이 꼴랑 옷 몇 가지뿐이라는 사실에 서러움이 폭발했던 적이 있다. 남편은 ‘다 같이 쓰는 건데 니꺼 내 거가 어디 있냐’며 공동 소유권(?)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남편의 지분이 내 지분보다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가진 자의 여유다. 중요한 순간에는 진짜 소유주가 나온다. 예를 들면 내가 노트북을 망가트렸을 때 같은.. ^^




그런데..

쓰다 보니 100만 원이 아니라 0이 하나 아니 두개는 더 붙어야겠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많은,

나는 물욕 많은 아줌마였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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