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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n 03. 2021

남편이 시댁에 혼자 가면 생기는 일

동상이몽



지난 금요일 3박 4일 일정으로 남편이 혼자 시댁에 갔다. 이전에는 남편 혼자 시댁에 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그날 이후 남편은 종종 시댁에 혼자 가곤 한다. 물론 일부러 함께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첫째는 연차, 월차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정규직 남편과 달리 나는 일을 쉬려면 대타를 구해야 하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고등학생 딸의 학원 스케줄 때문이었다. 특히나 올해는 딸의 수능이 코앞이라 시어머니조차도 이해를 하시는 상황이기도 했다.







금요일, 남편은 떠난다는 설렘으로, 나는 남는다는 설렘으로 아쉬운(?) 작별을 했다. 남편이 없는 3일 동안 뭘 할까 머릿속으로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먼저 베란다의 식물들을 정리해야지, 그다음은 보조 주방을 정리하고 그다음은 냉장고를 정리해야겠다. 매일 짐이 쌓이는 김치 냉장고 위도 정리해야겠네. 맞다. 책장도 정리해야지. 아직 사고 싶은 책이 많으니까.’ 그러고 보니 남편이 없는 주말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죄다 정리였다. 일반적인 정리라면 남편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할 수 있지만 나의 정리는, 베란다의 식물을 제외하면 90% 가 버리는 일이다. 사놓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이나 역시 새 것이지만 사용하지 않아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은 버려야만 하는데 남편이 있으면 그 모든 것들에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건 왜 안 먹었어?”

‘일부러 안 먹었겠소? 사놓고 맛없으면 다들 안 먹으니까 그렇지. 나 혼자 다 먹으라고?’

“그거 새건대? 버리게? 사놓고 왜 안 써?”

‘한 번 썼어. 그런데 싸구려라 그런가 별로네. 누가 그럴 줄 알았나. 당신도 그런 거 있잖아. 왜 나한테만 그래.’

(글로는 억양을 설명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비난하는 말투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예전에 비하면 남편의 잔소리가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눈치를 보게 된다. 마치 그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아서. 그날 밤, 계획만 세우다 아무것도 못 한 채 오랜만에 엄마와 잔다고 신난 딸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딸을 학교 논술 수업에 보내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토요일이어서 그런 건지 아침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토요일 아침이어서 그런 건지 도서관이 한가했다. 전날 반납된 책을 정리하는 사서 두 분과 나뿐이었다. 좋다. 보통 내가 도서관에 오는 시간은 평일 늦은 오후나 일요일 이른 오후였다. 평일 늦은 오후는 딸의 시간에, 일요일 이른 오후는 남편의 시간에 맞춘 시간이다. 그때는 늘 도서관에 사람이 많았다. 맛집의 혼잡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책과 함께 하는 도서관은 10여 명 남짓한 사람만 있어도 북적대는 느낌이 든다. 욕심껏 책을 대출하고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딸과 근처 빵집에 갓 나온 빵을 사러 갔다. 보통 때라면 움직이지 않으려는 딸이 이 날은 먼저 나서서 함께 가자고 했다. 갓 나와 바삭한 모카빵과 초코 소라빵, 치즈케이크와 딸기 파이를 사서 돌아오는 길 딸이 말했다.


“이상하지. 아빠가 집에 없을 뿐인데 꼭 여행 온 것 같아. ㅎㅎ”

“아빠 아시면 서운해하시겠다. 행여라도 내색하지 마.”

“응. 아빠가 딱히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그냥 같이 있으면 불편할 때가 있어.”


딸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사실 나도 그러니까. 남편 입장에서 보면 참 억울한 일일 것이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나만 같고 그래~~ 할 만한 일이겠지. 그런데 이상하게 딸도, 나도, 아들도 남편이 집에 있는 것만으로 행동의 제약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는데 말이다. 아마도 건강이 안 좋아 감정 기복이 심했던 남편의 눈치를 오랫동안 봤던 습관 때문이지 싶다. 지금은 상황을 인지하고 남편도 우리도 그런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한 번 몸에 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언젠가 딸이 친구들이 자신에게 ‘눈치가 빠르다’고 하는 것이 싫다는 말을 했다. ‘눈치가 빠르다’는 말은 그만큼 타인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면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조차 친구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자신이 싫다고. 그런 딸의 괴로움이 나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제라도 바꿀 수 있을까?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요일, 이틀을 어영부영 보낸 탓에 하고자 했던 일의 반의 반의 반도 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맘이 급해 냉장고 정리를 했다, 화분을 닦았다, 보조 주방을 정리했다 하는데 남편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전화를 해댔다. 다정이 지나쳐도 문제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남편이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다.

“남편 안 보고 싶남?”

“보고 싶어 잠을 못 자지.”

“칫, 거짓말.”

‘알면서 왜 물어보남?’

엄마와의 마지막 밤에 아쉬워하는 딸이 엄마 아빠의 닭살 행각을 들으며 한마디 했다.

“난 혼자 살래.”

미안하다. 모범이 못돼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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