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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May 31. 2021

참 가족 이야기

이런저런 기억 모음


아이들 어릴 적 블로그에 올린 육아일기를 읽었어요.

큰아이와 작은아이 육아일기인데 블로그를 새로 시작하면서 지금은 비공개로 돌려놓은 상태입니다. 사진 한 장 없는 짧은 글로 이루어진 육아일기들이었어요. 읽는데 글 속에 일들이 거의 기억에 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거예요. '이런 일도 있었구나.' '진짜 이 녀석이 이런 말을 했어? 지금이랑 너무 다르네.' '맞다. 둘째는 예전부터 말을 잘했지.' 등등 말이죠. 그때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쓴다는 생각보다 단순히 메모를 한다는 의미로 썼기에 아이들의 육아일기는 길어야 20 문장 정도가 될까 싶은 짧은 기록의 모음이랍니다. 그럼에도 그 기록과 함께 웃게 되는 저를 보니 장황한 글이 아니더라도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짧게라도 기록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제 개그 취향의 메모 글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잠이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남편은 언제부턴가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밤에도 그렇게 일찍 자는 것은 아닌데 꼭 새벽에 일어난다. 아침잠이 많은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참 불편한 일이다. 남편은 딸이나 나의 늦잠에는 눈치를 주지 않는데 유독 아들의 늦잠에는 싫은 내색을 했었다.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늦잠이라도 자는 날이면 저래서 대학은 가겠냐며 아들에게 온갖 눈치를 준 탓에 늦잠 자는 아들뿐만 아니라 나와 딸도 가시방석이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주말, 딸이 이런 남편에게 시원한 한 방을 날렸다.


주말이면 남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밀린 드라마와 예능을 보고 늦은 아침을 먹은 후 12시쯤 나에게 안마를 받으며 낮잠에 빠져든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과 시원한 안마의 콜라보를 받으며 단잠을 자는 것이 남편의 주말 루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날도 역시 얕게 코를 골며 잠들었던 남편이 안마를 멈추자 깨어나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휴.. 왜 이렇게 피곤하지? 깜빡 잠들었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까 그렇지."

"나 아침형 인간이 됐나 봐."


그러자 딸이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아침형 인간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낮에 자는 인간이야? 그럼 나도 주중에는 아침형 인간이네. 학교 가느라 일찍 일어나고 수업시간에 자니까."


딸의 한 마디에 남편은 멋쩍은 듯 웃고 나는 빵 터져버렸다.

그래, 너도 아침형 인간이다.









저녁 7시가 넘을 무렵 딸아이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전화 상담을 위해서였다. 사실 이번이 4번째 전화였다. 첫 전화는 알바 중에 와 받지를 못했다.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는데 모르는 번호라 대출 안내 같은 스팸 전화로 생각해 그냥 무시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전화는 일요일 아침 연달아 울렸다. 모르는 번호라 가뿐히(?) 거절을 했다. 남편에게 "아니 무슨 스팸 전화를 일요일에도 하지? 참 열심히 사네." 했더니 차단하라고 했다. 일요일 오전이라는 것이 찜찜해 일단 발신자 차단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등교한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렇게 담임선생님 전화번호도 저장 안 한 예의 없는 엄마가 되어 버렸다.


초등학교 이후 아이 담임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저장한 적이 없다. 딱히 담임선생님과 통화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화 상담의 경우 대부분 미리 시간을 정하고 전화가 오기 때문에 굳이 번호를 저장하지 않아도 한 번에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간도 정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전화가 와 세계여행 중인 내 개인정보를 보고 누군가 연락을 한 거라 오해를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딱히 할 말은 없는데 딸이 상담 신청을 해버려서 어쩔 수 없이 한 거라 나는 거의 듣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고 3이다 보니 이야기는 대부분 대입 이야기였다. 작년과 비교할 때 이 정도 성적이면 어느 대학이 가능할 것 같다는 그런 이야기들. 우리의 목표는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건데 담임선생님은 아이의 능력을 훨씬 높게 보고 계셔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서 최저만 맞추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작년에 저희 학교 3.7등급이 최저 맞춰서 이대 물리학과에 합격한 결과도 있어요."


어떤 의미로 하시는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이미 한 번의 입시를 치른 나는 선생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첫째 아이 학교에서도 5등급이 한양대에 붙었다며 엄청 홍보를 했는데 알고 보니 이과에서 교차지원을 한 경우였다. 심지어 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수상한 경력까지 있는 어마어마한 생기부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그걸 본 엄마들이 "저 아인 성적 빼곤 서울대네." 할 정도였으니 생기부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아마 입시를 치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가만히 듣다 내가 말했다.


"근데요 선생님, 그건 특별한 경우잖아요."

"어머 어머니. 그 특별한 경우가 울 OO 이한테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아... 네..."

그니까 천운을 빌라는 뭐 그런 말씀? ㅠㅠ

고 3 선생님이 참 해맑으시다. 덕분에 아이가 행복한 고 3을 보내고 있다. 결과도 행복하면 더 좋겠는데..



퇴근한 남편에게 상담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물리학과 지원했다 떨어진 분)이 한마디 했다.

“물리학과? 됐다 그래.”

붙는다곤 안 했다.


딸(여고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으신 분)도 한마디 보탠다.

“이대 안가. 여대는 안 갈 거야.”

원서 쓸 때 보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되나.


군대에서 전화 한 아들(프로 수능러?)에게 동생의 상담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나도 수능이나 다시 볼까?”

2번으론 부족한감? 수능이 취미니?


참 하나같다. 참 가족일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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