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커밍아웃
“나도 꼰대인 건가?”
거실에 엎드려 핸드폰을 보던 남편이 물었다.
“왜?”
“여기 기사.. ‘민망한 내가 꼰대인가? 외출 때도 입는 레깅스 수영복 나왔다’ 나도 레깅스 민망한데…”
“나도 민망해.”
“그건 왜 입는 거야?”
“몰라. 난 안 입어 봐서.”
나는 같은 꼰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편은 딸에게 다시 물었다.
“그거 편해?”
“몰라. 나도 안 입어봐서..”
답을 얻지 못한 남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러다 회사에도 입고 오는 거 아닌지 몰라.”
가끔 아니지 종종 길에서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여자들을 본다. 서울의 변방 같은 우리 동네에서도 보이는 걸 보면 레깅스 패션이 핫한 아이템이긴 한가 보다. 처음엔 그래도 상의는 롱티를 입어 엉덩이는 가리는 레깅스 패션이었는데 지금은 상의는 짧고 하의는 타이트한 레깅스 패션이라 길에서 마주치면 나 같은 꼰대는 흠칫 놀라곤 한다. 눈 둘 곳이 없어서 한 번, 내가 꼰대란 것을 들킬까 봐 한 번, 치한으로 오해받을까 봐 두려움에 한 번. 몸매가 좋건 나쁘곤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레깅스 입은 사람을 처음 봤을 때 나의 반응은 눈이 커지며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당황하는 것이다. 행여 왜 쳐다보냐며 시비라도 붙을까 얼른 시선을 돌리는데 그게 더 어색한 것 같단 생각이 들어 또 안절부절못한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았음 하는 마음이 제일 크다. 그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왜 저러고 다니지?’다. 요가학원이나 필라테스 혹은 에어로빅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갈아입기 귀찮아 그냥 집에 가는 것인가부터 관종인가 싶은 생각까지.. ‘왜?’라는 물음표가 끊임없이 붙는다.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무엇을 입던 그건 내 자유 아니냐, 그런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면 당신이 이상한 거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자유는 그런 거니까. 그런데… 그런 민망한 복장을 안 보고 싶은 내 자유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하지만 가족 외에 누구와도 레깅스 패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 레깅스 복장에 대해 민망함이나 불편함을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꼰대>라는 낙인을 찍을 수도 있으니까. <관종>은 용서해도 <꼰대>는 용서가 안 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사실 레깅스가 민망하냐 안 하냐 보다 슬픈 건 어떤 현상에
대해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렇게 말하면 꼰대라고 할까’라고 자기 검열을 한다는 점이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의 “네가 아직 어려서..” “네가 아직 생각이 짧아서..”라는 말이 나의 생각을 가로막았다면 먹을 만큼 먹은 나이가 된 지금은 “그건 당신이 꼰대라서..”라는 말이 나의 생각을 가로막는다. 아무래도 이제 커밍아웃을 해야 할까 보다. ‘그래 나 꼰대다’라고.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