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요리가 특별한 이유

우거지 찌개와 말린 가지 볶음의 추억

by 꾸미





결혼 전까진 음식을 해 본 적이 없는 친정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 솜씨가 좋으셨어요. 음식점이나 남의 집에 가 맛있는 음식을 드시면 재료가 뭐가 들어갔나 유심히 살피시기도 하고 물어보기도 하신 후 집에 와 비슷하게 만들어 내셨답니다. 저는 맛있다, 맛없다, 짜다, 싱겁다, 달다 등 기본적인 맛 표현 외에는 할 줄 모르는데 한 번 맛본 음식을 비슷하게 따라 하시는 엄마가 늘 신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친정 엄마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맛깔스럽게 하셨어요. 큰 고모는 식구가 많아 음식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음식을 만들 줄 모르던 제가 봐도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손맛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 사주에 식당을 하라고 했다는데(엄마는 식당은 죽어도 하기 싫다셨지만) 사주 가이런 타고난 손맛과 관련 있었던 것 아닐까. 사주팔자 같은 거 믿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맞다, 그랬지?' 하고 들어맞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문득 '그럼 내 사주에는 어떤 직업을 가지라고 나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드네요. 삼 남매 중 맞이인 저는 아직까지는 부모님의 열성 인자만 물려받은 것 같거든요. 두 동생은 아버지를 닮아 키도 크고 엄마의 야무지고 차분하고 사람 좋아하는 성격을 닮았는데 저는 엄마의 작은 키, 아버지의 불 같은 성격을 몰빵 받았답니다. 엄마의 손맛과 아버지의 키를 닮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리죠. ^^



핑계지만 이런 이유로 저는 결혼 전에는 라면조차 끓일 줄 몰랐답니다. 오직 주는 대로 잘 먹는 먹순이가 친정에서의 제 담당.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에게 결혼 전 딱 두 번 음식을 해줬었는데 그 음식이 세상 쉽다는 김밥과 카레였답니다. 세상 쉽다는 김밥을 만들 때는 고추기름과 참기름을 구분 못해 고추기름 김밥을 만들었고 카레는 카레 가루를 넣기 전에 감자와 양파 등의 속재료를 다 익혀야 하는 줄 알고 너무 오래 볶아 정작 카레를 먹을 때는 건더기가 씹히지 않을 정도로 흐물거렸었죠. 지금 이러면 아마 남편에게 엄청 잔소리를 듣겠지만 그때는 사랑의 힘(?)으로 남편이 군말 없이 모두 먹어치웠었네요.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9년이 지나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의 맛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마 특별히 레시피로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의 집밥(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버섯 부침개 등등)이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그런 평범한 집밥 중에 유독 기억에 남아 다시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어요. 그건 바로.. 친정 엄마가 끓여 주시던 우거지 찌개와 말린 가지 볶음이랍니다. 이 명칭이 맞는지로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희 집에서는 그렇게 불렀는데 또 다른 집에서는 다른 이름이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저희 집은 우거지 찌개를 좀 특이하게(?) 먹었어요. 갓 지은 흰밥에 마가린을 넣고 보글보글 끓인 우거지 찌개와 비비면 고소한 마가린의 맛 때문에 우거지 된장찌개의 맛이 한결 부드럽게 느껴진답니다. 물론 살은 찌겠지만. ^^ 우거지의 씹히는 식감은 또 어떻고요. 우거지 찌개의 재료라곤 삶은 우거지와 찌개용 돼지고기, 양파가 전부였는데 세상 그렇게 맛있는 찌개는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된장찌개에 마가린을 넣어 비벼먹는 것이 보편 된 것이 아니고 우리 집에서만 하는 방식이란 건 결혼 후 남편을 통해 알았네요. 남편은 마가린과 비벼 먹는 것을 저희 친정에서 처음 해봤다고. 처음엔 '이게 뭐지?' 했는데 장모님이 주시니 싫다, 좋다 말 못 하고 비벼 한 숟가락 뜨고는 그 맛에 홀딱 빠져버렸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찌개라고 하기엔 국물이 너무 많았고 국이라고 하기엔 국물이 너무 적었던 것 같은데 각자 개인 그릇에 떠서 먹지 않고 상 가운데 올려진 냄비에서 온 가족이 함께 먹었기 때문에 찌개라고 한 것 같아요. 특히 우거지는 지금도 제가 참 좋아하는 반찬 재료랍니다. 저 어릴 적에는 우거지가 싼 반찬 재료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우거지를 보기도 힘들고 가격도 싸지 않더라고요. 결국 아쉬움에 얼갈이 가격이 쌀 때 왕창 사다가 집에서 삶아 우거지를 만들어 놓는데 왠지 어릴 적 그 우거지 맛은 나지 않더라고요.




말린 가지 볶음은 어디선가 엄마가 어깨너머로 배워 오셔서 해주셨던 것인데 가지를 먹지 않는 제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먹는 가지 음식이었어요. 적당히 자른 가지를 바람 잘 부는 베란다에서 꾸덕꾸덕하게 말린 후 간장 베이스 양념을 한 것인데 식감이 꼭 고기를 씹는 것 같았거든요. 만드는 방법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닌데 요리에 관심이 없던 시기에 제대로 보지 않고 먹기만 한 탓에 말리는 방법이라던지 양념 재료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너무 먹고 싶어 몇 번인가 기억을 더듬어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아파트 생활을 하는 저는 친정집처럼 바람 잘 부는 그늘진 곳을 찾을 수가 없던 탓에 가지를 말리는 것부터 쉽지 않더라고요. 너무 딱딱하거나 너무 물러서 그때의 고기 식감을 느낄 수는 없었답니다. 식품 건조기를 사면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자연에 말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거예요.







문득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은 저의 어떤 음식을 그리워할까 하는 궁금증이 듭니다. 전업 주부라는 타이틀 때문에 외식이 아닌 집밥을 해 먹이려고 꽤 많이 노력했지만 요리에 재주도 없고 친정 엄마에게 음식을 배워본 적도 없는 저는 초록 창의 레시피뿐이 의지할 곳이 없었거든요. 아이들과 남편은 제가 하는 음식은 뭐든 맛있다고 잘 먹어주지만 마늘 1숟가락, 간장 3숟가락, 돼지고기 600그램처럼 정확한 정량으로 기록되는 인터넷 레시피에 따라 만든 저의 요리는 어쩌면 누가 해도 같은 맛을 내지 않을까 싶어요. 저만의 고유한 맛을 아이들에게 기억시켜 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나이가 드니 예전에는 몰랐던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퉁쳐서 그냥 고향의 맛이랄까요? ^^



물론 정확한 양의 레시피를 가지고 음식을 하면 좋은 점도 있어요. 누가 만들 건, 어디서 만들건 같은 맛을 낼 수 있으니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거든요. 또 아이들이 엄마의 음식 맛이 그리울 때도 기록해 놓은 레시피대로 음식을 하면 그 맛을 맛볼 수 있는 건 인터넷 레시피의 큰 장점이겠죠. 그런데 신기한 게 인터넷 상의 레시피를 따라 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먹어본 음식인데" 내지는 "그 집이랑 맛이 같네"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왜일까요?


사실 아무리 같은 레시피를 사용해도 맛은 똑같지 않답니다. 그건 아마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손맛 때문인 것 같아요. 손맛이란 것은 마치 고유명사 같은 거라 같은 재료와 같은 양념으로 요리하더라도 맛이 다르게 나오거든요. 손맛이 뛰어날 수도, 조금 나쁠 수도 있지만 그 손맛 때문에 같은 레시피라도 다른 맛의 음식이 만들어진답니다. 그 손맛이 결국 엄마의 요리를 특별하게 해주는 비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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