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모두를 놀라게 했던 시어머니의 이 말

by 꾸미




결혼하고 친정 근처에 자리를 잡았어요. 남편의 회사가 강남이라 출근하기 불편했지만 시댁이 멀리 있어 친정 근처에서 살면서 육아에 도움을 받으라는 시댁의 배려(?)때문이었죠. 그렇게 자리 잡은 동네에서 지금까지 남편은 강남으로 출근을 하고 있으니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에, 만원 전철을 타고 출퇴근해야 하는 남편에게는 늘 미안하고 고맙답니다. 물론 그 배려(?)를 받은 덕분에 결혼 후 몇 번 강제 이사를 할 뻔 하긴 했어요. 시댁 사촌들이 사는 곳, 시아버님 지인 집, 마지막엔 시댁으로.. 하지만 친정마저 떠난 이 동네에서 전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답니다.







결혼할 때 친정 엄마는 저에게 딱 한 가지만 가르쳐 주셨어요.

"여기서 보고 들은 건 다 잊어버리고 무조건 시어머니가 하시는 것을 따라.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했는데, 저렇게 했는데 하지 말고. 알았지?"

집에서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곱게 자란 딸인지라 친정에서 보고 들은 것도 별로 없는데 행여 '우리 집에서는..'이라는 말로 시어머니를 가르친다 오해받을까 걱정하신 친정 엄마의 마음이었겠죠. 말 안 듣고 고집쟁이인 제가 아마 유일하게 지킨 친정 엄마의 말인 것 같아요. 꼭 청개구리처럼 말이죠. 그러면 안됐었는데.. 이것만은 지키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든 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한참이 지난 뒤였답니다.






친정 근처에 산다는 이유와 형님이 하지 않은 일이라는 이유로 저는 결혼 후 한 번도 명절 당일에 친정을 가 본 적이 없어요. 시댁으로 출발하기 전 친정에 잠깐 들어 인사를 하고 돌아온 주말에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자리 잡았죠. 그나마 형님은 그것마저 못하셨으니 시댁 옆에 살며 시집살이를 하셔야 하는 형님 때문에라도 감히(?) 친정을 가겠다는 말을 못 했답니다.


그다지 사이가 좋은 형제간은 아니었지만 늘 함께 했던 명절을 저만 빼고 한다고 생각하니 남은 사람보다 떠난 제가 더 허전하더라고요. 시댁 근처에 사시는 형님은 이미 시댁 사람처럼 느껴졌고 갓 시집 온 저는 시댁에서 늘 이방인 같은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친정에서조차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본인 집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집이라 생각하는 남편에게도, 결혼을 그다지 반기지 않은 친정에도 말을 못 하고 속앓이 하던 시절, 낯선 사람, 낯선 곳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제 개인의 문제려니 하고 적응하려고 참 부단히도 노력했네요. 결국 실패했지만 제 인생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노력했던 적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처음 얼마 동안은 남편도 명절에 처가를 가지 않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한 탓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들을 기회가 없었고 자신의 형이 가지 않으니 명절에 처가를 가지 않는 것이 그냥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직장 생활을 하고 친구들도 결혼을 하면서 그동안 당연히 생각해 왔던 시댁의 명절 문화가 뭔가 이상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워낙 기가 센 시어머니와 나이 차이가 나는 형에게 대항할 힘은 없었어요. 처음엔 남편이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그동안은 저만 속앓이를 했는데 이제는 남편이 알아주고 이해해 주니 뭔가 해결책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 기대랄까요? 물론 그 후로도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어요. 하지만 남의 편이었던 남편이 내 편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명절 시댁에서 지내기가 조금 수월해졌답니다. 가끔 남편이 입바른 소리를 하면 집 안 분위기가 싸~~ 해지는 탓에 잘못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저 제게 미안해하는 선에서 늘 마무리가 되었지만요.




그 해 설날도 그런 날이었어요. 남편이 입바른 소리 하던 날.

늘 그렇듯 차례를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답니다. 거실의 TV에서는 설날 귀성길 정체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죠. 늘 나오는 뉴스라 별생각 없이 밥을 먹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뭘 새벽부터 가느라 저 난리누."

모두 대꾸 안 하고 있는데 남편이 무슨 생각에선지 한소리 하더군요.

"차례 지냈으니 며느리들도 친정 가야죠."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명절 전 새벽 4시에 출발하고 명절의 빨간 날이 끝나고 하루 휴가를 내 돌아오는 저희의 행동이 당연하다 생각하셨던 걸까요?

"친정은 좀 있다 가면 되지. 며느리들이 시댁에 있기 싫어서 아주 난리야."

시어머니의 궤변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에 이 정도 말씀에는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아요. "아니에요, 어머니. 며느리들이 다 그런 건 아니에요."라고 맘에도 없는 소리로 사탕발림을 해도 욕을 먹고 "당연한 거 아니에요."라고 바른말을 하면 두 배로 욕을 먹으니 모두 그냥 그러려니 하는 상황. 그런데 시어머니가 한 방을 크게 날리시더군요.

"울 며느리들은 친정 가려고 애쓰지 않아서 참 예뻐."

시어머니의 이 말에 귀를 의심했답니다. '이게 칭찬이야?'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거지?' '이게 말이야 방구야' 제 옆에서 밥을 먹던 형님이 제게 조용히 그러시더군요.

"내가 미안하다."

형님이 애초에 그렇게 시작하신 탓에 저도 못한다는 걸 아시는 거죠. 형님인 들 첨부터 그러고 싶어서 그러신 거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저는 그저 말없이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네요.

시어머니의 궤변에 답답했던 남편이 또 한 소리를 하더군요.

"엄마, 어디 나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남들이 들으면 욕먹어요."

이 정도면 남편도 속마음 많이 순화해서 말한 거란 걸 압니다. 아마 성격대로였음 '그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냐' 고 화를 냈을 꺼고 아마 설날 아침부터 집안에 큰소리가 났을 거예요. 이쯤 되면 시어머니도 본인이 무슨 말을 잘못하신 건지 아셔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워지기도 하거니와 특히 하지 말라면 더 하시는 시어머니의 성격이 더해져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말씀하시더군요.

"왜? 나는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울 며느리들은 친정 가려고 애쓰지 않아 이쁘다고."

명절 내내 시댁으로 안 가고 친정으로 모이는 외사촌들은 효녀라고, 어떻게 딸들 교육을 저리 잘 시켰냐 칭찬하시면서 당신 며느리들은 명절에 친정 안 가 이쁘다고요?

시어머니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모두 머리를 떨구며 밥그릇에 코 박고 밥만 먹었답니다. 단 한 번도 명절에 처가에 가지 않은 시아주버님조차도 말이죠.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것을 왜 참고 사느냐고 하실 수도 있어요. 저도 다른 사람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걸 왜 참아요. 밥상 뒤집어엎고 와야지. 처음부터 아닌 건 아닌 거다 딱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양보하고 잘해준다고 해서 상대방도 알아주는 건 아니에요."라고 야무지게 말할 수 있답니다. 그런데요, 제삼자의 입장과 당사자의 입장은 또 다르더라고요. 처음부터 집안의 분란을 각오하고 제가 할 말은 하고 살았다면 지금보단 나은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성격과 그 당시 제 상황이 그렇지 못했답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누구든 이야기해주세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렇지 않음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테니까요.


벌써 한 주 뒤면 설이 돌아오네요. 이번 설에는 시어머니가 또 어떤 명언(?)을 남기실지 기대 아닌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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