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식사를 주문하지 않은 이유

by 꾸미



얼마 전 남편의 심장혈관 조영술을 위해 당일 입원을 한 적이 있었어요.

1년에 한 번씩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해주는 건강 검진에서 T파 역위라는 소견을 받고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 문의를 드리니 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시더군요.

40을 넘어 50을 향해 달려가니 하나 둘 고장 나는 곳이 생겨납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몸 관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덜 하겠지만 저희 부부는 둘 다 숨쉬기 운동만 하는 사람들이라 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늘 높게 나오는 쪽이거든요. 그래도 아직 버틸 만 한지 늘 건강 검진에서 건강하지 못하다는 소견이 나와도 운동할 생각은 않는 참 무식하고 고집스러운 부부입니다.

이번 결과도 만성이라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나오고 실제로 통증이 느껴진 터라 검사를 해보기로 결정했어요. 검사를 하기로 하고 예약을 잡고 입원하는 당일까지 남편이나 저나 심장 혈관 조형술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아보지 않았답니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방법부터 비용까지 만약의 경우에 어떤 질병이 있는 건지까지 다 알 수 있는 세상이지만 찾아보지 않았어요. 남편도 저도 두려웠거든요. 만일 심장에 이상이 있는 거라면.. 두려움이 크면 외면하게 되더라고요.







병원에 가면 세상에는 아픈 사람만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큰 종합병원에 늘 사람으로 북적북적,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병원은 잠들지 않죠.

7시 반까지 입원 수속을 마치라는 안내에 따라 아침 일찍 저희가 병원에서 간 곳은 검사를 위한 심장내과 병실이었어요. 검사를 위해 당일 입원하거나 혹은 시술 후 1박 2일의 짧은 입원을 하는 경우 머무는 병실이라 환자복을 입고 있지 않다면 누가 환자이고 누가 보호자인지 구분하기 힘든 그곳에서 저희 부부가 제일 젊더군요. 아픈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냐만 서도 제일 어리다는 것이 왠지 아직은 그곳에 오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검사 시간은 이상이 없으면 20~ 30분, 이상이 있을 시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간호사 분의 말씀에 검사실로 들어가는 남편도 밖에서 기다리는 저도 마음이 불안했답니다. 검사실 문이 닫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주변을 둘러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검사실 복도 의자에서 눈길이 가는 분이 한 분 계셨어요. '보호자신 것 같은데 더 환자 같아.'라는 생각이 드는 모습의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검사를 받으시는 것 같은데 검사 결과에 대해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이해하실 수 있을까? ' '자식이 없으신가?' 오지랖 넓은 상상을 하는 사이 남편은 다행히 시술을 받지 않아도 되는 초기인지라 비교적 짧은 검사를 받고 병실로 돌아올 수 있었네요.

그렇게 안도감과 함께 무용담(?) 하나 득템한 남편과 병실로 돌아오고 잠시 후 할머니 한분이 검사를 마치고 들어오시더군요. 그 침대 뒤를 검사실 앞에서 뵈었던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가 가방을 들고 따라오셨어요. 마침 점심시간인지라 간호사 분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식사는 어떻게 하실 건지 물으시더군요.

"할아버지, 식사 추가 가능한데 추가해 드릴까요?"

"어~~ 해주소."

"아휴, 입맛 없네. 안 먹을랑께 하지 마소."

두 분의 대답이 엇갈리니 간호사 분이 다시 묻습니다.

"식사 어떻게 해드릴까요?"

"해주소."

"안 먹는다니께~"

이대로라면 무한 도돌이표 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될 듯 한 상황 간호사 분이

"보호자 분 밥만 추가하실 수 있어요."

그러자 입맛 없어 안 드신다던 할머니가

"그럼 해 주소."

'아~~ 할아버지 걱정에 혼자 밥을 드시지 못하겠던 거셨구나. 간호사 분이 눈치가 빠르시네.'

그제야 식사를 주문하는 할아버지에게 화를 내듯 싫다시던 할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답니다. 할아버지는 긴장하신 탓인지 식사 주문까지 끝나고 할머니가 병실 침대로 이동하는 것을 보신 후 보호자 의자에 털썩 주저 않으시더군요. 환자를 간호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픈 사람만큼 보호자도 힘들어요. 허리까지 굽으셔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할머니 침대 뒤를 쫓아다니시느라 얼마나 긴장하고 힘드셨을지 맘이 짠해졌네요.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피곤한 저희는 커튼을 치고 잠시 긴장을 풀고 졸고 있었어요. 잠시 후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 워낙 작은 병실에 다닥다닥 붙은 침대인지라 옆 침대분들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굳이 엿들으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들리더라고요.


"보험이 없어. 뇌경색이 왔을 때는 보험금을 받았는데 그게 70세 만기였던 거야. 예전 보험이라 그래. 그래서 그 후에 다시 들려고 하니 나이가 많아 안 되더라구. 이제 자꾸 아프니까 돈도 많이 들고 힘드네."

"애들은 안 와요?"

"애들도 자기 살기 바쁘니 매번 오기도 그렇고 돈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이제 그만 죽어야 하는데 것도 맘대로 안되니.. "

처음 보는 옆 침대 아주머니에게 신세 한탄을 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엔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과 삶에 대한 고단함이 느껴졌어요.

사실 저도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가 보호자로 쫓아다니시는 걸 보고 처음에는 '자식들은 뭘 하기에..'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저 역시 부모님이 아프시다 해서 늘 병원에 함께 가진 못했더라고요. '우리 엄마도 저런 마음이셨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떠난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 울컥했네요. 그리고 한편으론 함께 하지 못하는 자식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어요. 직장 때문에, 아이가 어려서.. 등등 함께 하고 싶어도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자식들에게도 많잖아요. 자꾸 아픈 할머니나 찾아오지 못하는 자식이나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모두 미안하고 서운한 맘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부모의 노후 대책이 자식이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자식 하나만 잘 키우면 그 자식이 커 부모님을 모시고 자식을 키우고, 다시 그 자식이 커 그 부모를 모시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 그 시절에는 대단한 성공이 아니어도 일을 하면 이 모든 것이 가능했었네요.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 봉양에 자식 교육, 그리고 자신의 노후 대책까지 해야 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보통의 삶으로는 버텨낼 수가 없더라고요. 가진 것에서 나눠야 하니 자칫하면 어느 한쪽이 서운하다는 감정을 갖게 되나 봐요. 아마 시간이 더 흘러 외국처럼 복지가 잘 된다면 이런 문제도 조금은 해결되겠지만 과도기인 지금은 모두 서운하고 힘듭니다.


노부부를 보며 우리 부부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의 20년 30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그때도 아픈 할머니와 허리 굽은 할아버지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하고 있을까? 병원비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정해져 있어요. 수명이 늘어난다고 해서 일할 수 있는 시기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죠. 가끔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일을 못하는 시기가 얼마나 길지 생각해 봐요. 아무런 일도 없이 30~40년을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싹 사라집니다. 돈 걱정도 걱정이지만 할 일 없이 하루를, 1년을, 10년을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삶이 얼마나 지루할지.. 물론 경제력도 걱정이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돈 없이 장수하는 것은 복이 아니라 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인생은 참 오묘해서 돈을 벌지 못하는 시기에 돈이 더 많이 들어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100세 시대라는 문구가 반갑지 않습니다. 미래 때문에 현재를 저당 잡히는 것 같거든요. 현재도 살아야 하고 미래도 준비해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기분이랄까요? 그저 현재를 열심히 살면 미래가 보장되는 그런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약을 받아 병실을 나서는데 두 분이 나란히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계시더군요. 그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앞으로 저희 부부의 모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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