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터울의 두 아이를 기릅니다. 왜 4년 터울을 뒀냐 물으신다면 어쩌다 보니? ^^
형님이 17개월 터울의 연년생을 낳으시고 저에게 절대 연년생은 안된다고 누누이 강조하셨던 것도 하나의 이유고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초보 엄마인지라 큰 아이가 어느 정도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는 시기에 낳아야겠다는 생각에 터울을 두게 됐어요. 사실 그 시기만 넘겼음 낳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나 혼자 산다에서 방성훈 씨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다 싶은 경우가 있다고.. 그때가.. (결혼할 타이밍이라고)”
그 이야기에 이시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때만 참으면 돼. 그때 하면 안 돼.”
맞아요. 뭐든 타이밍이 중요하죠. 그 타이밍을 놓치면 그럭저럭 또 시간이 흘러가더군요.
막연히 터울을 두고 낳아야지 했는데 큰 애가 4살쯤 되니 꼭 낳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한 번씩 들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초등학생 큰아이의 손을 잡고 아기띠에 둘째를 업고 있는 엄마를 본 후 남편에게 통보했어요. “난 저렇게는 못해. 지금 아니면 둘째는 없어.” 그렇게 4년 터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으로 둘째를 고집했는지 모르겠어요. 세상에 100% 실패하는 투자가 있다면 저는 아이에게 하는 투자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 냉혹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 하는 모든 것을 투자로 생각한다면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까요? 투자를 했다면 금전적인 수익이 나야 하는데 아이를 기르는 동안 하는 모든 행동을 투자로 친다면 나에게 돌아오는 금전적인 수익은 없기 때문이죠. 오히려 요즘 같은 세상엔 마이너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다른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게 계획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 첫째와 달리 둘째는 철저하게 계획 임신을 했답니다.
임신과 출산이 무계획이었던 첫째의 육아는 육아서에 입각해 계획적(?)으로 진행했어요. 육아서에 나온 '몇 개월 ~ 몇 개월에는 무엇을 하세요.'에 맞추어 아이의 발달이 하루라도 늦으면 장애가 있나 놀라고 조금 빠르면 천재인가 흥분하는.. 계획적인 듯 계획적이지 않은 육아를 했네요. 시어머니의 옛날 방식 육아와 조금 부딪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육아서의 발달 과정에 맞추어 잘 자라주었답니다. 굳이 강요를 한 건 아닌데 신기하게 첫째는 육아서에 나온 발달 시기에 맞춰 걷고 먹고 하더라고요. 물론 육아서에 나온 말이 전부 맞지는 않았어요. '울면 달래주지 마라.', '스스로 쓰레기통에 젖병을 버리게 해라.', '약속을 안 지킬 시 스스로 깨닫게 해라.' 등등 육아서에 나온 말들을 그대도 따라 하느라 웃지 못할 일도 많았네요. 장난감 차를 정리하지 않으면 전부 가져다 버리겠다고 협박을 한 뒤에도 정리하지 않는 아이에게 책에 나온 대로 스스로 망치로 차를 부숴 버리게 했더니 울면서 잘못했다고 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울면서 톡톡 부수는 통에(심지어 신나 보였음) 본전 생각난 제가 오히려 말렸던 일, 잘못한 아이를 방에 들어가 반성하라고 했더니 반성은 커녕 세상 평온하게 쿨쿨 잠들어 버렸던 일, '둘째가 생기기 전 미리 유치원에 보내 아이가 버림받았단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해라'는 말을 믿고 강제로 유치원에 보내는 바람에 학교에 대한 거부감만 쌓았던 일 등. 지금 돌아보면 그러지 않았어도 될 일들을 첫째에게는 너무 강요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엄마 주도하에 커서인지 아이의 성향인지 지금도 첫째는 자기주장이 없어보여서 또 다른 걱정을 합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할 힘을 뺏어버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이제라도 아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뒤에서 지켜보자 다짐하죠.
그에 반해 둘째는 낳는 것부터 자기 주도적(?)이었어요. 한참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가 수중 분만을 하고 아빠가 탯줄을 잘라주는 가족 분만이 유행하던 시기라 저도 둘째는 자연분만을 하고자 마음먹었었죠. 의사 선생님께 자연분만 의사를 밝히고 자연분만을 기다려 보기로 했어요. 철분 수치가 9까지 떨어져 철분 주사를 10병이나 맞고 40주를 꽉 채웠지만 결국 자연 분만을 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저는 자연분만을 할 수 없는 통뼈더라고요. ㅠㅠ
둘째 육아는 첫째에 비하면 쉬웠어요. 굳이 육아서에 나온 몇 개월에 무얼 한다는 아이의 발달 과정에 집착하지 않아도 아이는 알아서 큰다는 걸 첫째 육아를 통해서 알았거든요. 경험만큼 큰 배움은 없죠. 혼합 수유하다 분유만 고집한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모유만을 고집해 4살까지 모유를 먹었네요.(육아서에는 몇 개월에는 끊어야 한다고 나와 있었지만요)6살에 한글을 깨친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간신히 가나다라 만 알았어요. 그래도 걱정이 안되더라구요. 아마 첫째였다면 야단을 치면서라도 가르쳤을 꺼예요. 밥 먹는 것도 얼마나 느린지 단체 생활에서 급식 시간을 걱정해야 하는 느림보였죠. 이 역시 첫째였다면 집에서 미리 연습을 시킨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줬을 텐데 첫째를 통한 육아 학습은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여유를 주었답니다. 울면서 유치원 차에 끌려 탔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유치원 가고 싶다고 할 때 보내고 그만 다니고 싶다 해 집안 최초 유치원 중퇴를 했네요. 그리고 근처 문화센터에서 아이가 배우고 싶다는 것 위주로 실컷 배우게 해 줬어요. 학교 가기 전 미리미리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둘째는 자기 주도적으로 생활을 합니다.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자기만족으로 공부를 하고 자기 의사 표현이 분명해요. 저희 가족은 '이걸 할까? 저걸 할까?' 고민되는 것이 있으면 둘째에게 갑니다.
두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더군요. '한 배에서 나온 형제여도 한 부모가 키운 아이여도 이렇게 다르구나', '보편적인 상황에 대해 적어 놓은 육아서 한 권에 내 아이의 육아를 의지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라는 걸요. 두 아이를 키우건 세 아이를 키우건 육아서는 아이에 맞춰 늘 새로 써야 한다는 걸 두 아이를 키워보고서야 알았답니다. 아이와 관찰하고 소통하면서 말이죠. 세상에 있는 모든 육아서가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특별한 내 아이에게 맞는 육아서는 매일 함께 먹고 자는, 엄마인 나만이 쓸 수 있는 거더군요. 그래서 두 아이의 엄마인 저는 아직도 육아 초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