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의 대화가 어려운 이유

by 꾸미


"그래도 내가 좋은 시어머니 1등은 아니어도 2등은 돼. 그건 자신해. 그렇지 않니?"

언젠가 시어머니가 내게 물어보셨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물음표로 끝나니 질문이지 않았을까? ^^

시도 때도 없이 훅 들어오는 시어머니의 이런 질문은 참 곤란하다.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거짓을 말하자니 무슨 진실만을 말하는 약을 먹은 것처럼 입이 안 떨어진다.


결혼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시댁은 나에게 여전히 불편한 장소다. 여자는 결혼하면 친정도 불편하고 내 집이 가장 편하다고 하지 않는가. 친정도 불편한데 시댁을 불편하게 느낀다고 해서 못된 며느리로 몰아갈 때면 억울하단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좋은 며느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






나는 지독한 내향인이다. 선천적인 내향인 성격에, 지내온 환경마저 더해져 지독한 내향인 성격이 만들어졌다. 결혼 전에는 살아 남기 위해(?) 억지로 사회성 스위치를 켰다면 결혼 후에는 영원한 내편인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 스위치 켜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렇다. 누가 내게 '사람과의 스트레스를 참을래? 지독한 외로움을 참을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후자를 택할 정도로 지독한 내향인이다. 그런 내가 시댁에 있을 때는 이런 나 자신을 숨기고 외향인처럼 행동해야 하니 시댁은 나에게 영원히 편할 수 없는 장소인 것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신 시어머님은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그 상태가 더욱 심해지셨다. 방금 전까진 기분 좋으시다 갑자기 무슨 이유에선지 기분이 다운되시면 모든 일에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시는 통에 가족 중 누구도 시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시어머니를 피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애쓰며 몰려다니는 우리들의 모습이란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 같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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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곧잘 시어머니를 따라 찜질방도 가고 바깥나들이를 다녔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크는데 시어머니는 그것을 받아들이시지 못하니 아이들과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며 아이들은 할머니를 점점 불편해하게 되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대부분 상대적이다. 내가 잘하면 상대방도 잘하고 내가 못하면 상대방도 못한다. 내가 편하게 느끼면 상대방도 편하게 느낀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고 본다.) 시어머니는 왜 아이들이, 왜 식구들이 자신을 불편해하는지는 생각지 않으시고 늘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를 내시니 관계는 점점 더 나빠질 수뿐이 없었다.


나 역시 시어머니와의 시간이 편하지 않았기에 처음엔 남편을 따라 집을 나서곤 했다. 그래 봤자 아이들과 형님네 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시어머니는 싫어하는 내색을 숨기지 않으셨다. 이유는 형님이 피곤하다는 거였지만 사실은 본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식구들이 함께 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면 싸한 집안 분위기. 결국 나는 어느 순간부터 '너 하나 희생하면..'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매 명절 시어머니 전담맨으로 시어머니와 단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단둘이 있는 시간에 가장 힘든 일은 시어머니 말에 맞장구를 치는 일이었다. 왜 그럴 때면 드라마에서는 꼭 막장 며느리가 나오고 뉴스에서는 명절 고부갈등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막장 시어머니가 나오면 "난 저렇지는 않아. 그런 걸 너는 다행으로 알아야 해. 세상에 며느리 못 잡아먹어 안달인 시어머니가 얼마나 많은데.."

막장 며느리가 나오거나 명절 여자들끼리만 음식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시댁 먼저 가는 문화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뉴스가 나오면 "요즘 것들은.." 하시며 혀를 차시는 시어머니와 함께 있으려면 그야말로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그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시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 드라마나 그런 뉴스를 보면 꼭 내게 물으신다. "너도 오기 싫으냐?" "오기 싫으면 담부턴 오지 마라." 저..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내색도 안 했는데요. ^^;;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안 하신 분이다. 하나뿐인 큰댁과는 거리가 멀어 거의 왕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결혼 당시 이미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상황이라 시집살이란 것을 해보지 않으셨다. 게다가 딸도 없으신 분이라 시댁이란 것이 며느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솔직히 얘기해 나만큼 며느리를 편하게 해주는 시어머니가 어디 있냐? 그치?”

'저 지금 몹시 불편한데.'


어디서 들으신 이야기 신지 종종 각색이 된 것 같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도 하신다.

"시어머니가 아들이 좋아한다고 양미리를 잔뜩 보냈는데 며느리가 그걸 먹지 않고 냉동실에 쌓아뒀다나 어쨌다나. 시어머니가 아들 집에 가서 그걸 보고 시에미가 보낸 거 먹지 않고 버린다고 당장 이혼시킨다고 며느리랑 싸움이 나 난리 난리가 났다더라. 그 시어머니 성격도 대단하지? 난 그 정도는 아니야. 그치?"

'그런가요? 택배비 아깝다고 어머니는 보내진 않으시죠. 그런데 어머니는 베란다부터 안방 장롱까지 다 열어보시잖아요.'


"OO 이는 시댁이 꼴두 보기 싫어 시금치도 안 먹는다더라. 거참 요즘 것들은 시에미가 무슨 죄가 있어 그렇게 싫어한다냐? 못된 것들. 너도 시에미 싫어 시금치도 안 먹냐?"

'저 시금치 좋아하는데.. 그런데 그런 깊은 뜻(?)이 있다니..'


"OO네 집은 서로 할머니랑 자려고 싸운다는데 우리 애들은 할머니랑 자자면 다들 도망가기나 하고.. 너네가 시에미를 싫어하니까 애들도 그러는 거야."

'아.. 네.. 어머니가 새벽 5시부터 TV를 크게 틀지 않으시면 애들도 어머니랑 잘 거예요.'






시어머니가 하시는 질문에 나는 답을 하지 않는 편이다. 아무리 오래 시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드리고 시어머니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드려도 시어머니의 마음을 풀어드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질문들 속에서 시어머니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으신 걸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내 탓은 아니라고 책임 회피를 하고 싶으신 걸까? 젊은 시절의 시어머니가 어떤 분이셨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지금과 같으셨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셨을 수도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대에 맞는 공통적인 행동과 생각의 변화가 있다. 내가 시어머니의 나이가 되면 시어머니의 말씀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버리신 시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가끔은 안쓰럽고 가끔은 짜증 나고 가끔은 '나도 나이 들면 이렇게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나이가 드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유연한 생각을 갖고 넓은 마음으로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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