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는 걸까? 38000원의 연회비를 내야 하는 부담과 맞바꿀 메리트는 뭘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도 이용하는 코스트코. 확실히 묻지 마 반품 시스템은 너무 좋긴 하다. ^^;;
그날도 몇 십만 원 치 장을 보지만 늘 당일 저녁거리는 동네 마트에서 따로 사야 하는 미스터리를 풀지 못한 채 코스트코에서 잔뜩 장을 본 후 남편은 차를 가지러 가고 나는 매장 앞에서 카트를 지키고 있었다. 주차장이 붐빌 경우 우리는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고 근처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는 편이다. 코스트코에서 운영하는 임시 주차장은 카트를 끌고 갈 수 있지만 우리가 이용하는 공영 주차장은 카트를 끌고 가지 못하는 탓에 남편이 먼저 가서 차를 끌고 와야 하는 불편함이 좀 있지만 주말에는 공영 주차장이 무료라는 점과 위와 같은 불편함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아 우리는 조금 걷는 것을 택하곤 한다.
남편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20대 초중반의 젊은 아가씨가 큰 소리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엿들을 의도는 없었는데 크게 이야기하며 왔다 갔다 하니 이어폰을 꽂고 있지 않는 한 들릴 수뿐이 없는 상황.
“아니, 그걸 왜 내가 하냐고.”
“아~ 난 몰라. 됐고. 빨리 해결해. 나 다 그만두고 쫓아내려 간다. “
얼핏 들으니 아가씨의 전화 통화 상대방은 엄마 같았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개인적인 전화를 하고 엄마에게 버릇없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젊은 아가씨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궁금하지 않은 남의 사생활을 억지로 알게 되는 기분이랄까.
‘요즘 애들은 참. 창피한 줄도 모르고. 예의는 국 끓여 먹었냐. 엄마한테 말하는 뻔세 좀 봐라.’
쳐다보지 않으려 눈은 핸드폰에 맞추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흉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도 늙었구나 싶은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이는 못 속인다고 나도 꼰대가 되어 가고 있구나..
그렇게 차를 가지고 돌아온 남편과 함께 짐을 실었다. ‘예의가 있거나 말거나 나랑 무슨 상관이람.’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우리 앞에 멈춰서 소리를 지르다시피 더 큰 소리로 통화를 하는 게 아닌가. 하나도 안 궁금한데 참 자꾸 들리네.
“내가 무슨 돈이 있어. 지난번에도 그래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어떻게 나 몰래 내 이름으로 1억을 빌려.” 조금 전까지 그저 조금 개념 없는 요즘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와 남편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그 아가씨를 쳐다보았다. 거의 울 듯한 모습의 그 아가씨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처음보다 격하게 악을 써대고 있었지만 아까랑은 다르게 보였다.
"나 죽는 꼴 보려고 그래? 지금 나 내려간다. 내가 가야 해결할 거야?"
짐을 다 싣고 차에 탄 뒤 돌아보니 그 아가씨는 전화를 끊고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대고 주저앉아 있었다.
"저 아가씨도 참 안 됐다."
차를 출발시키며 남편이 말했다.
"그러게. 아직 어려 보이는데 1억 원이라니.. 막막하겠다."
1억 원.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기에 부모라는 사람이 자식한테 저럴 수 있을까? 사정이 정 안되면 동의는 구하고 해야지, 애가 뭔 죄야?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는 것 같지도 않은데 걱정이네. 세상 참, 어떤 집은 자식이 속을 썩여 부모가 죽겠다 하고 어떤 집은 부모가 속을 썩여 자식이 죽겠다 하니..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자식 노릇을 못하는 사람만큼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도 많다.
어릴 적 드라마 속의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보며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런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왜 우리 엄마 아빠는 저렇지 않은 거지? 가슴 따뜻한 위로의 말도, 인생의 선배로써 멋진 조언도 해주지 못하지? 하고.. 엄마와 친구처럼 아빠와 형제처럼 지내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부러워하며 그렇게 나도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알았다. 드라마 속의 부모가 현실에 존재하기는 정말 힘들다는 것을. 왜일까?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식으로 살아간다. 자식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법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사회 속에서 쭈욱 자식은 부모 말을 잘 따라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며와 같은 자식으로서의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교육 아닌 교육을 받고 살게 된다. 그런데 부모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인 사람은 없다. 자식이 자라 부모가 된다. 자식으로만 살아오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디에도 부모가 되기 전 부모 교육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 해도 과연 몇 명의 부모가 교육의 필요성을 느낄까? 혹 교육을 받는다 해도 몇 번의 교육으로 과연 효과가 있을까? 결국 자신이 자라면서 본 부모 모습에서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을 수 뿐이 없다. ‘난 우리 엄마 아빠같은 부모가 되진 않겠어.’ 혹은 ‘난 우리 부모님같은 부모가 되겠어.’ 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어느쪽이든 정답은 아니다. 좋지 않은 부모의 모습을 닮지 않겠다는 맘에 무조건 반대로 하는 것도, 완벽해 보이는 부모의 모습을 무조건 따라라는 것도 내 아이에게 맞는 교육법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다르고 아이의 성향이 다르다는 것은 수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사람을 기른다는 것은 단순히 학문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아닌 하나의 인격을 형성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써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출산만으로 숨겨져 있던 본능이 깨어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부모가 된 후 알게 된 분명한 것은 부모에게도 자격이 필요하고 그 자격을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도 쉬운 것도 없다는 진리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