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보이스피싱 인기녀(?)
첫 보이스 피싱 전화는 큰 아이 중학교 때였다.
어느 날, 아이들이 전부 학교에 있을 시간 집전화로 전화가 왔다.
“OO이네 집이죠?”
“네. 맞는데요.”
“OO이가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머리를 다쳐서 피가 많이 나고 있어요.”
“OO이가요? 왜요?”
나의 질문에 전화를 하신 분은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가 피를 흘린다니까 왜요 라니요."
"그니까 어쩌다 피를 흘리냐고요."
수화기 건너편 남자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그건 모르겠고 운동장에서 피를 흘리고 있어요. OO이 바꿔드릴까요?"
"네. 바꿔주세요."
"OO이 전화받아. 엄마야. 울지 말고."
옆의 누군가에게 전화기를 넘기는 듯한 말과 "흑흑" 약간은 억지스러운 울음소리 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리는 OO이의 목소리
"(울먹울먹) 엄마~ "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내가 첫사랑에만 실패하지 않았어도 너만한 아들이 있다 보다 조금 더 나이 든 청년의 목소리.
"넌 누구냐?"
"뚜뚜뚜뚜...."
아씨~ 잘못 말했다. 그래 아들아 라고 했어야 하는데..
저기요~~ 저 한가한데.. 좀 더 통화 가능하거든요.
두 번째 보이스 피싱 전화는 얼마 전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였다. 보통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는데 몇 번이나 오는 핸드폰 번호라 혹시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는 전화인가 싶어 받았다.
"OOO 씨 핸드폰 맞나요?"
"네, 전데요."
"네. 저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실 xxx 수사관인데요."
"검사실요? 거기서 왜요?"
"OOO 씨 명의가 도용되었다는 정보가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제 명의 가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명의 도용이 의심되니까 연락드리는 거죠."
"정확히 어디서 명의가 도용이 되었다는 건가요?"
"아니 그러니까 명의 도용이 의심이 돼서 확인해야 하니 통장 번호랑..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실 누구시라고요? 제가 그쪽 아는 분이 계신데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지금 찍힌 이 번호로 연락드리면 되는 거죠?"
"뚜뚜뚜뚜.."
쯧쯧.. 그래서 밥은 먹겠니?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가 생각났다. 보이스 피싱이 아니라 장난 전환가? 뭐 이렇게 시시하게.. 그렇게 두 번째 보이스 피싱 전화가 끊어졌다. 다시 되걸었으면 받았으려나??
나는 순발력이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다. 아마 무방비 상태에서 이런 전화를 받았다면 당황해 나도 보이스 피싱 피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 첫 번째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았던 날은 마침 아이가 시험 기간이라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서 머리를 다칠 일이 없던 날이었고 담임선생님이 여자분이셨고 내 아들이라 바꿔준 분의 목소리가 2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청년의 목소리가 한 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교육 카페에 비슷한 사례의 글들이 보이스 피싱에 대해 미리 경고를 해주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보이스 피싱 전화 역시 전화를 받기 며칠 전 ‘요즘은 검사실을 사칭한 보이스 피싱 전화가 온다’며 조심하라는 글이 sns에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고도 긴가민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단지 두 번의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고 찜찜했던 건 아이의 이름과 집전화번호, 내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집전화는 없앴다. 어차피 있어봤자 여론 조사 전화가 제일 많았으니 굳이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개인 정보가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자주 나왔고 내가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들이 해킹되어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어차피 샌 정보를 어쩌겠냐는 낙천적인 성격과 구체적인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피해를 당할 만큼의 금액을 통장에 가지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개인 정보 유출 피해를 입고 보니 누군가 나에 대해 나도 모르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사실은 아니었다.
브런치 인기글에 올라온 보이스 피싱 글을 보다 문득 예전에 내게 걸려왔던 보이스피싱 전화가 생각났다. 맞다. 그때 그런 일도 있었구나. 사진만큼 글도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사진보다 글이 더 많은 나만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의 글에서도 나의 추억이 떠로르니 말이다. '예전엔 그랬지.', '맞다 이런 일도 있었네.',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물론 읽다 보면 이불킥하는 글이 더 많지만 글 속에는 예전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많다. 한 때 글은 특별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역시 재능 있는 사람의 글이 더 멋지고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누군가의 공감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내가 마주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