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정규직으로도 분류되지 못하는 봉사직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회사 생활을 안 해봐서일까? 봉사직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 후 육아와 가사만을 하던 내가 처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이력서를 내 합격한 곳이 이곳이다.
봉사직
4대 보험, 퇴직금, 계약직 전환에 해당하지 않음
모집 공고에 있던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이 마흔의 사회 초년생, 경력 단절 아줌마를 뽑아준 것이 마냥 감사했고 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았던 것 같다. 6시간 근무에 일당 35000원. 점심 밥값과 차비를 빼고 나면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받았지만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행복했었다. 가계에 보탬이 되는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남편은 나를 응원해줬다. 늙을수록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며 돈은 상관없으니 사람도 만나고 예쁜 옷도 사 입고 재미있게만 지내라고.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올해도 나는 시급 만원 하루 3시간의 봉사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 나는 또 한 번 벽에 부딪쳤다.
"봉사직은 시급의 개념이 없어요."
"주당 15시간 미만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15 시간하고 계시니 시간을 줄여야 할 것 같아요."
"봉사직은 하루 3시간을 넘으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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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규정이 올해 새로 생겼나요?"
"아뇨."
"그런데 왜 갑자기.. 지난 4년간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그럼 그동안 제가 일해온 것은 뭔가요?"
"잘못된 거죠."
"...."
비정규직에게 행해지는 회사의 불이익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비정규직도 아니지만..
'갑이 알고 하는 잘못을 당하는 을의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
알면서도 '당신이 어쩌겠어.'라며 당연하게 행하는 잘못된 일들. 그래, 나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겠지. 하지만.. 갑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다. 속상한 맘에 남편에게 푸념을 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딱 한마디를 내게 던졌다.
“아니다 싶음 그만둬. 왔다 갔다 차비 빼면 남는 것도 없겠다. 팔도 아픈데 무리하지 말고.”
남편의 이 말에 분하고 억울해 마그마처럼 들끓던 내 마음이 한밤의 바다처럼 고요해졌다.
남편에게 푸념을 하면서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만두고 싶은 건가? 아님 누군가 잡아주기를 원하는 건가?'
아니다 싶음 그만둬.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였을지도 모르겠다. 혼자가 아니라는, 내가 당신과 함께라는, 당신에겐 우리가 있다는..
오늘도 나는 갑의 부당함을 모른 척하며 봉사(?)를 하러 나간다. '아니다 싶음 그만둔다'는 쓸 수는 없지만 든든한 비장의 카드를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