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화분 10개 사.

by 꾸미


코로나 때문에 집콕 생활이 길어지는 요즘, 맥시멈 라이프를 살고 있는 내게 미니멀 라이프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매의 눈으로 집을 스캔~~ (스캔할 때만 매의 눈이다.) 이런, 전부 버릴 것들이다. 한동안 집안 청소에는 손을 놓았더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이사를 가야 하나. ^^


그나마 가장 깨끗한 주방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뒤죽박죽 섞인 물건들. 어디든 빈 공간이 보이면 일단 올려놓고 보는 나아쁜 습관을 가진 탓에 우리 집은 빈 공간이 없다. 문득 눈에 띈 식탁 옆 선반. 언젠가 정리한다 바구니 안에 모든 걸 때려 넣고 잊고 있었다. 리모델링한다면 이 선반은 반드시 없앨 거다. 청소하기만 귀찮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선반. 바구니를 꺼내니 먼지를 뒤집어 쓴 커피병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뚜껑을 장식한다 붙여놓은 도일리 페이퍼는 누렇게 색이 변해있었다. 벌써 5년 전이네.



2015년 내 생일에 초등학교 6학년, 13살 딸이 준 선물. 처음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꺼내보는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늘 힘이 나고 미소 짓게 되는 선물이다. 나름 꾸미기를 하고 돌돌 말은 종이를 넣은 재활용 커피병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기자기한 꾸미기 선물인 줄 알았다. 보나 마나 편지랑 쿠폰이겠지 하며 속으로는 시큰둥했지만 겉으로는 “너무 예쁘다. 우리 딸이 만든 거야? 선물 고마워.”라는 과한 리액션을 했었다. 선물은 정성이라지만 그동안 어린 딸의 선물은 누구를 위한 정성일까 싶게 본인 만족도만 높았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본인이 가지고 싶은 것들 위주의 선물들. ㅎㅎ



하긴 아이들에게 용돈도 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전업주부로 항상 집에 있었던 덕분에 아이들은 떡볶이나 문방구에 가고 싶으면 용돈을 달라는 말 대신에 당연한 듯 엄마인 나를 호출했다. 명절에 받는 용돈은 모두 아이들 통장에 저금한 후 통장 내역을 확인시켜줬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이가 엄마에게 선물을 사 준다는 것 자체가 금전적으로 무리였다. 그래도 아들보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쓰지 않으니 딸 키우는 맛이라면 이런 게 아닐까.




재활용 커피병 속 돌돌 말은 세 개의 쪽지 중 하나는 예상대로 편지. 하나도 역시 예상대로 내가 좋아하는 꽃을 실컷 사라는 의미의 쿠폰이었다.

‘니 허락받고 사는 거 아닌데. 이런 쿠폰이 무슨 의미지?’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을 여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만원이 돌돌 말려 있는 쪽지. 초등학교 6학년 딸에게 받을 줄 몰랐던 선물이었다. 그 당시 아이에게 만원은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실컷 살 수 있는 엄청 큰 금액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실컷 사라며 몰래 감춰둔 만원을 선물한 딸아이의 마음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그때 알았다. 선물은 정성이 맞다.



해마다 내 생일이 돌아오면 딸은 내게 필요한 선물을 물어보며 자신이 준 만원을 이야기한다.

“엄마 돈 주면 또 아무것도 안 살 거잖아. 겨우 만원인데 왜 아직도 안 쓰고 갖고 있어.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더 많이 줄게. 그리고 필요한 거 말해. 내가 사줄게. 나 돈 있어.”

“그 돈이 그 돈이지. 얼마나 있는데.”

“아니야. 이거 내 용돈 모은 거야. 엄마 비싼 거 골라도 돼. 나 엄마 선물 사려고 5만 원이나 모아놨거든.”

5년 전보다 5배나 많은 돈. 이제 고등학생이 된 딸은 용돈을 받고 돈의 가치를 알게 되었지만 내게는 아직도 5년 전 딸이 준 재활용 커피병 속의 만 원짜리 한 장의 가치가 더 크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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