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시댁은 24평 오래된 빌라에서 43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연년생 둘을 키우시느라 직장을 그만두신 형님네와 합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드물게(?) 며느리인 형님이 합가를 주장했던 걸로 안다. 연년생 육아때문에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던터라 어차피 잠만 따로 자는 거 번거롭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직 결혼 전이었던 나는 시댁 이사 후 이사 정리도 돕고 시댁 문화도 적응할 겸 잠시 다녀가라는 부름을 받고 시댁을 방문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견례 자리에서 한 번 본 예비 며느리를 이사 정리를 도우라는 명목으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부른 것도 이상하고 그 부름에 '왜?'라는 의문조차 갖지 않고 “네.”라며 간 나도 이상하지만 그때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곧 법인 줄 알던 순진한 시절이었다. 처음 시댁을 방문하던 날, 현관문을 열며 나를 반겨주신 분은 나보다 4살 위 형님이셨다.
“엄마~~~ 쫄다구왔어.”
‘엄마? 이 집에 딸이 있었나?’
사실 시어머니에 대한 내 첫 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딱 드라마 속 사나운 시어머니의 모습. 남편에게 전해들은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그런 내 고정관념에 한몫했다. 목청 크시고 친구가 있어도 욕을 하신다는.. ^^;; 과연 내가 이분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한가득이던 때 들은 형님의 “엄마”라는 호칭은 내게는 충격임과 동시에 안도감을 가져다 주었다. 엄마?? 엄마라고??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최악은 아닐지도 몰라.
한없이 시댁이 불편한 나와는 다르게 시댁이 너무나 자연스럽던 형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닌 엄마와 딸처럼 보였던 시어머니와 형님의 첫 인상은 나에게 시집살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했고 고부관계에 대한 로망을 갖게 했다.
‘딸같은 며느리라는 것이 진짜 존재하는구나. 부럽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나의 며느라기 시절이 시작되었다.
집에 돌아와 친정 엄마께 호칭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엄마, OO이네 갔는데 언니가(형님이라는 호칭은 나이들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나 겨우 사용하고 나는 쭉 언니라고 부른다.)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더라고. 그럼 친정 엄마는 뭐라 부르시나 봤더니 ‘서울 엄마’라고 부르시는거야. 난 어머니란 말도 어색한데.. 나도 그렇게 불러야 하나?”
내 말을 들으신 친정 엄마는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넌 절대로 엄마라고 부르지 마. 다른 건 다 형님이 하는대로 보고 따라하는데 그건 하지마. 시어머니 부를 땐 꼭 어머니라고 불러.”
처음에는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 엄마가 서운함에 하시는 말씀인가 했다. '뭐 그런걸로 샘을 내고 그래.’하면서.
하지만 지금은 안다. 단순히 샘이 나서, 서운해서 한 말이 아니란 걸. ‘엄마’라고 불리는 시어머니의 마음과 ‘엄마’라고 부르는 형님의 마음이 다르다는 걸. 호칭이 어떻든, 딸같은 며느리, 엄마같은 시어머니는 존재하기 어렵다.
‘엄마’라고 불리는 시어머니에게 며느리는 갖고 싶던 엄친딸이었고, ‘엄마’라고 부르던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그렇게라도 친해져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 엄마라고 부르지 않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