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위하기만 하는
배려는 배려가 아니다

by 들샘

공동체가 산산히 조각난 사회에서 배려는 미덕이다. 학교에서도 배려는 언제나 미덕이었다.

배려심 많은 아이. '배려'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치 않는 선행이 선행일 수 없듯 상대방을 위하기만 하는 배려는 배려가 아니다.


수혜와 호혜를 구분해야 한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위하는 행위는 상대방을 수혜자로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호혜적 행위어야 한다.

물질적 대가가 없는 수혜는 없지만, 물질적 대가가 없는 호혜는 있다.

호혜적 행위의 대가는 정신적 위안이며, 삶의 고양이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할 수록 호혜적 행위마저도 수혜적 행위로 접근하고 이해하는 경향이 늘어난다.


공동체가 아무리 파편화되고, 서로를 헐뜯는 가시밭 속에서도 교육은 언제나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교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유구한 교육적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교육을 수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준 만큼 받아야 하고, 내가 받을 수 있는 만큼 주려고 한다.

이러한 가치관 속에서는 결코 교육이 바로 설 수 없다.


교육은 언제나 호혜적 믿음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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