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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혁 Jul 27. 2024

곡예사

침묵과 힘 사이의 줄타기



 곡예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아는가? 곡예사란  줄타기, 요술, 재주넘기, 공 타기 등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선과 악 사이에 놓인 줄을 타고 있는 나 또한 곡예사 야 마땅할 것이다.

 렇다고 진짜 곡예사냐고 묻는다면 부디 주변에서 방패삼을 거라도 찾아보길 부탁한다. 만약 주변에 집어들 것이 없다면 입의 지퍼라도 잘 닫아주기를 간절히 희망다. 

 나의 언행이 지금 날이 서 있는 이유는 일말의 인내심조차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지 누군지도 모를 당신이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아직까지도 내가 누구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까 싶지만 혹시나 있을 사람들을 위해 말해주자면 나는 당신들과 똑같은 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쉽게 말하면 회사원이라는 뜻이다. 근데 왜 지금 이런 위태로운 행위를 하고 있냐고? 그건 내가 묻고 싶을 지경이지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금일 퇴근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굳이 평소와 다른 점을 찾자면 길을 걷다가 개똥을 밟은 정도 일. 그렇게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었을 때 그때부터가 빌어먹을 사건의 시작이었다. 분명 집에 아무도 없어야 할 공간에 두 명의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이제는 아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한 명은 소파에 누워 천박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런 그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그들을 보고 무단침입한 강도라고 판단하여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조심히 문을 닫으려는 순간 몸이 저절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던가? 그러고는 나의 두발이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더니 이내 소파에 도착해 그들을 목도하고야 말았다.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파에 누워 있는 놈은 머리에 뿔이 달린 만화에서 나올법한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내 옆에 서 있는 그자는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본 나는 당장이라도 기절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정신은 오늘 하루 중에서 가장 또렷했다. 물론 그때도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뒤로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천사와 악마가 처음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를 하더니 이내 나에게 고개를 돌려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언어를 계속해서 바꿔가 말할 때쯤 나의 모국어가 나와 흠칫하고 놀랐다. 그때부터 천사와 악마는 나의 모국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둘 사이의 대화가 멈추내게 처음 말을 건 자는 다름 아닌 악마였다.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그거 다 답해줄 시간이 없다. 그냥 너는 내 질문 하나에만 대답하면 돼."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내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질문은 간단해. 모든 소원이든 이루어주는 내기가 있다면 참여할 텐가?"

 나는 저 질문에 대해 생각하기 이전에 움직이지 않는 입으로 어떻게 대답하라는 건지 싶었다. 이런 궁금증을 가질 때 천사가 내 머릿속을 읽었는지 내 입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할 수 있을 거야."

 천사의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평소에 말을 하지 않는지 쇳소리가 났다. 악마의 달콤한 목소리와는 딴판이었다.

 이내 천사의 말처럼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입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당신들은 누구냐며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다시 입이 닫혀 버리고 말았다.

 "물론 묻는 말에만 말이야."

 어찌 되었든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건 꿈이다. 평소 자각몽에 관심이 많았지만 빈번히 실패한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할게."

 악마는 갸우뚱하며 웃어 보였다. 그의 입속은 참으로 역겨운 상어 이빨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왜 미소를 짓는지는 모르겠지만 원하는 대로 해주지."

 그의 말과 함께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며 변하더니 아래에는 불구덩이와 그 속에서 타 들어가는 망령들이 보였고, 망령들은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본 적이 있는 곡예사들이 재주를 부리던 밧줄 위였다. 순간 놀라 균형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떨어지나 했지만 몸을 엎드려 겨우 밧줄을 잡아 살 수 있었다. 엎드리니 아래에서 올라는 불구덩이의 온도가 생생하게 피부를 통해 전해졌다. 꿈인 줄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생생한 감각에 두려움까지 들 정도였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주변을 둘러보니 앞쪽에는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악마와 뒤로는 천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마치 지옥. 지옥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자각몽이라면 내 뜻대로 꿈을 바꿀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 애써봤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공포에 젖은 눈으로 악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나를 쳐다보며 악마는 또다시 빌어먹을 이빨을 보여주었다

 "내기는 간단. 5분 동안 그 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너의 승리. 떨어지면 의 패배."

 전과는 다른 목에서부터 끓는 듯한 악마의 목소리에 몸서리치며 겨우 악마에게 되물었다.

 "패배하면 어떻게 되는데?"

 악마는 아무런 대답 없이 아래를 가리킬 뿐이었다. 아래에는 영원한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망령들이 보였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밧줄을 더 힘껏 끌어안았다. 솔직히 뜨거운 열기만 빼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시작."

 이라는 악마의 말과 함께 눈앞에 타이머가 흐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그때 악마가 밧줄을 잡고는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있는 힘껏 밧줄을 끌어안고 다리를 꼬았다. 그렇게 몇십 초 지나자 이걸로는 나를 떨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흔들림이 멈추었다. 잠깐의 휴식에 안도하려는 찰나 이번에는 내 귀 쪽으로 박쥐 같은 것이 날아오더니 초음파를 쏘기 시작했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며 귀에서 피가 흐르더니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떨어지는 느낌이 들자마자 정신이 들 다시금 힘껏 밧줄을 움켜 잡을 수 있었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여 옆에 있는 박쥐를 확 낚아 채 있는 힘껏 움켜쥐어 뼈를 으깨 버렸다. 그러고는 망령들이 목욕하고 있는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버리고는 타이머를 바라봤다.

 타이머의 시간은 아직도 4분이나 남아있었다.

 이제 내가 왜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이해가 가는가? 나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상황과 희망조차 없는 환경에 절망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저 악마는 절망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이어서 나를 향해 주먹만 한 돌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포크와 나이프를 던졌고, 지막으로는 팔 길이만 한 삼지창을 던졌다. 당연히 모두 다 맞았다. 지금 내 온몸에는 돌로 인해 멍으로 칠해져 있었고, 포크와 나이프가 고슴도치 마냥 등을 치장해 주고 있었다. 삼지창은 다행스럽게도 빗겨 맞아 오른쪽 허벅지가 조금 찢어졌을 뿐이었다. 물론 실제로 다행스럽다는 건 아다. 지금 죽을 위기에 처해있고, 어느 순간부터 이게 꿈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이머는 아직도 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피로 인해 시야가 가려지는데도 타이머만은 또렷하게 잘 보였다.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뒤에 있는 천사를 향해 소리쳤다.

 "천사님, 제발 도와주세요!"

 하지만 천사는 침묵했다. 맨 처음의 나의 입술을 만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천사의 태도에 화가 났다.

 "제발! 저 좀 도와주십시오. 어째서 악이 저렇게 활개를 치고 있는데 선은 침묵만 하십니까!"

 이 말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평소의 한을 담아 소리쳤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겪어온 부조리들, 그리고 마주한 악과 항상 희생만을 강요하는 선.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것보다 지금은 남은 3분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나는 울부짖었다. 살고 싶다고 애원했다. 애원한 상대가 천사인지 악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천사는 침묵했고, 악마는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제 보니 악마의 입 속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안으로 들어갈수록 촉수 같은 돌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런 괴이한 모습에 치를 떨며 바지를 적셔버렸다. 그리고 이 장면은 악마에게 더 큰 웃음거리를 선사한 꼴이 되었다.

 악마는 몇 초간 더 웃더니 이내 흥미가 식었는지 정색을 하고는 발을 굴렀다. 그러더니 움켜 잡고 있 밧줄에서 거대한 가시들이 튀어나오더니 온몸을 찔렀다. 나는 갑작스러운 고통에 순간 손을 떼어버렸고, 이는 곧 추락을 의미했다.

 '죽는다.'

 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떨어지면서 보이는 침묵하는 천사와 비웃어 대는 악마가 보였다. 그러고는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이게 주마등이구나 싶을 즈음 등에 물컹한 감촉이 느껴지더니 이내 온몸이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비명을 질러댔다. 눈은 이미 다 타서 앞을 볼 수 조차 없었다. 귀도 목도 다 녹아내린 덕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바람 새는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말이 비명이지 마치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안 보야할 눈앞에 타이머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타이머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대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이에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의 시트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밖은 이미 아침이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꿈이라는 것에 일차적으로 안심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안정을 되찾은 후에는 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천사가 침묵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줄에서 버티고 있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집중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악을 무찌르지 않은 이유는 악마에게 가기 위해서는 밧줄을 지나야 하는데 이때 내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챈 것은 이미 내가 떨어지고 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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