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바다로 드라이브를 나와 바다 경치가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 두고는 잠시 미래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다. 과거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저명하신 교수님으로 불렸었지만 현재는 그저 소년과 함께 살고 있는 노인일 뿐이었다. 소년은 오늘따라 유난히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말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했다. 소년은 이 말이 그토록 입에서 안 떨어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할아버지, 어항 속 물고기는 행복할까요?"
할아버지는 대답 없이 듣고만 있었고, 소년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니면 원래는 바다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어항 속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가 행복할까요?"
할아버지는 소년을 바라보며 입 주변 수염을 만지작 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바다라는 존재를 처음부터 모르는 물고기와 바다라는 어미의 품 속에서 자라왔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박탈당한 물고기 중 누가 더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내 생각에는 전자 쪽이지 않을까 싶구나."
소년의 눈은 하늘을 유유히 유람하는 구름을 쫓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행복이라는 것은 상대적이기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전자의 물고기가 더 슬플 거예요."
소년은 잠시 침묵하더니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물고기에게 바다란……."
"기적이란 말이지?"
할아버지가 소년의 말을 가로챘다.
"맞아요, 기적. 저는 기적을 느껴본 물고기는 그것을 추억하며 다시 상기시킬 수라도 있지만 처음부터 기적의 존재를 모르는 물고기는 어항 속의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굴면서 살아갈 거 아니에요. 물론 저의 관점에서 바라본 견해이긴 하지만요."
할아버지도 소년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할아버지가 보기에는 말이다. 기적을 느껴본 물고기는 얼마 안 가 죽지 않을까 싶구나. 다시는 기적을 느끼지 못할 거라는 절망감에 빠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소년은 아까보다 감정적인 어투로 대답했다.
"만약 기적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바로 앞에 목도하고 있는데 가지 못하는 경우 라면요? 그토록 바라던 것이 눈앞에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면요?"
소년은 고개를 떨구고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런 소년을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신음하더니 몇 분 안 있어 명쾌한 답이라도 얻은 사람처럼 눈을 반짝였다.
"하고 싶은 게 있는 게로구나. 그럼 해 보거라. 할아버지가 되어서 어항이 될 수는 없지. 넌 아직 어리단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어. 너에게 기적을 안겨 줄 수는 없지만 너를 막아서는 투명한 장애물들은 할아버지가 다 해결해 주마. 그러니까 너는 그저 앞을 향해 헤엄치면 된단다."
소년은 이제 더 이상 고개를 떨구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이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는 앞에 있는 광활한 바다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바라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것만 같았다.
"사랑해요, 할아버지."
소년의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굉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어항 속 물고기였다. 바로 앞에 바다를 목도하고 있는 물고기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어항에 금이 가 있었고, 그 틈으로 물이 새어 나가더니 점점 균열이 커져 구멍을 만들었다. 구멍은 내가 빠져나가기에 충분했다. 흥분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아래 등껍질이 깨져있는 거북이 보였다. 내가 어항에 들어오기 전부터 있던 저 거북은 내가 큰 물고기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게 도와준 고마운 존재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순간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잠시 동안 그를 바라보며 지난날들의 추억을 상기시켜 보았다. 그러고는 예전에 거북이 나에게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의 이야기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중에 함께 바다로 가자고 말해주던 거북의 인자한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 그러고는 오늘 꾼 꿈과 그날의 기억이 겹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할 일은 이제 기적을 일으키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나는 거북에게 짧은 인사를 남기고는 작은 틈 사이로 힘껏 헤엄쳤다. 나의 몸은 순간 하늘을 날았다. 처음 느껴보는 하늘의 감촉과 설렘. 이것이 기적이구나를 느낄 때쯤 다시 한번 처음 느껴보는 맛과 감촉의 품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거북이와 함께 가자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그의 모습은 머릿속에 확실히 간직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방금까지 내가 있었던 어항과 그 속에 들어있는 물고기들, 그리고 죽은 거북이 보였다. 다시 한번 거북에게 들리지 않는 감사를 전하고는 뒤로 돌아 불안과 설렘을 가득 안고선 미지의 공간을 향해 힘껏 헤엄쳐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