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존재가 주는 감상

아빠라는 사람

by 솔의눈꼽

설 연휴 첫날 아침, 제주도로 골프여행을 가는 아버지를 공항에 바래다주었다. 장거리 운전은 늘 아버지의 몫이었는데 내가 최근에 운전을 배우면서 아버지가 아침에 막걸리 한잔까지 곁들이고 차를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나 같으면 그런 변화를 새삼 즐거워할 텐데 아빠는 마땅한 감정표현이 없었다. 아무튼 공항에 무사히 도착해서 골프백과 캐리어를 내리고 아버지와 가벼운 포옹을 한 뒤에 나는 엄마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하는 게 만고불변의 불문율 아닐까? 집에 들어와서 점심도 먹고 디저트까지 먹은 뒤에 엄마, 누나가 말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사실, 나쁜 이야기나 감정이 드러나는 대화는 없었고 거의 담백한 일화나 사건이 주였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는 아빠라는 사람에 대해 더 생각해봤다.


먼저,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나에게는 아버지, 아빠가 혼재한다. 반말과 존댓말이 섞여 나오는데 이것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냐 없냐 정도의 헐거운 기준에 따른다. 지금 쓰는 글에도 아빠와 아버지가 혼란스럽게 뒤섞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굳이 고치지는 않겠다.


아빠에 대한 감상은 다양함을 넘어서 다면적인데 먼저 긍정적인 것들을 꼽자면, 아빠는 정직하고 유순하고 강압적이지 않으면서 박학다식하다. 예를 들면, 예전에 학원을 운영하셨다가 망했는데 20년이 지난 뒤에 고향에서 만난 옛 직원분이 엄마한테 '그때 월급은 다 챙겨주시고 학원을 정리했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학원이 망했다는 시점에 우리 집은 쫄딱 망해서 원래 살던 아파트가 처분당하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었다. 지금보다 어려웠던 시대를 감안하면 이것도 나름 정직함의 발로가 아닐까?


아버지는 다그치지 않으셨다. 본인의 기질에 기인한 무관심의 유형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정서에는 그게 맞았고 지금까지도 궁합이 꽤 괜찮은 것 같다. 결과론적인지 아니면 그런 방임에 가까운 교육환경이 내 성격에 맞춰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할 일을 알아서 하는 아들로 성장했다.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갈증을 느끼게 할 것이 의도였다면 가히 놀라운 아버지의 교육방식이었다고 칭찬하고 싶다. 요즘따라 주변에서 부모 자식 간에 감정 상하고 다투는 경우를 많이 접하는데 나를 돌아보면,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에게 채근하지 않고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말과 감정을 아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내게 '박학다식함'은 대화의 주제도 풍성하고, 삶의 노하우가 연륜에 맞게 다층적으로 쌓인 사람에게 받는 인상이다. 아버지가 딱 그렇다. 사회현상의 일면에 드러난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그 이면에 어떤 의도나 배경이 있는지를 늘 말씀해주시곤 했다.


사실 이런 것들만 말하려고 했으면 앞에 다면적이라는 단어를 굳이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우리들끼리 시시콜콜 얘기할 필요도 없었고. 아버지의 부정적인 면? 아니다. 나는 인간적인 면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은 세 단어로 한량, 무신경, 로맨틱하지 않은 사람이다.


부모님 모두 직장인인데 엄마가 직장생활과 주부의 역할을 타이트하게 병행한다면, 아빠는 일과 가정 모두 여유로운 편이다. 나는 60이 넘은 어른들이 시대에 맞춰 자신의 역할을 바꿔나갈 것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설거지와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정도의 집안일만 하는 아빠가 썩 나쁘지는 않다 생각한다. 하지만 집에 붙어있으려 하지 않고 골프든, 여행이든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는 모습에서 유유자적함을 넘어서는 일말의 불만족이 우리 가족들에게 아빠는 한량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


주변을 잘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앞의 내용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나로서는 적당한 무관심으로 느꼈고 그 거리감이 오히려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엄마와 누나한테는 무관심, 그게 끝이었다. 엄마는 집안일을 더 돕지 않고 늘 밖으로만 도는 것에 대한 불만, 누나는 자신의 취업준비 생활에 따뜻한 위로나 조언이 없었던 것에 대한 불만으로 마친 것이다. 이것은 나도 아쉽게 생각하지만 그럴 때면 늘 생각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절대적인 나쁨이 아니기에 평가도 다를 수 있다'라고


마지막으로 로맨틱하지 않다는 것도 어쩌면 위의 내용과 연계되는 것인데, 아빠는 가족들의 생일마저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 누나와 내가 엄마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구체적인 지시까지 내려줬지만 아빠는 단 한 번도 따라준 적이 없다. 사실 내게는 이것이 아버지에게 갖는 가장 큰 불만족이다. 아빠와 엄마는 이제 부부를 넘어서 동지로 살아갈텐데 상대방이 원하는 게 뻔한데도, 그렇게 해오지 않았고 그렇게 하는 게 민망해서 시도하지 않는 건 큰 잘못이라고 본다.


다행히 나는 이런 아쉬운 부분들을 채우려고 노력해서인지, 본가에 내려오면 꼭 식사 준비나 설거지도 나서서 하고 엄마의 생일에는 늘 예쁜 꽃과 케이크 그리고 넉넉한 용돈을 준비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아버지의 다면적인 모습이 나에게 큰 교육이 되었다 느끼고 감사한다.


아버지는 내게 '바꿀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자세'를 물려주셨다. 그리고 당신이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면서 반면교사로, 나로 하여금 불만에 그치지 않고 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주었다. 정말 비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보이고 결과론적으로 내가 그 경계를 조금 넓혀 가족들이 더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에 가깝다.


아빠를 제주도에 보내고 떠올려본 당신에 대한 내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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