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잠들지 않는다

by 김성민


처음에는 천둥소리인 줄 알았다. 우르릉 쾅쾅. 하늘이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진동이 느껴졌다. 그런데 조금 더 들으니 아니었다.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호텔 앞에서 무언가 옮기는 모양이었다. 덜커덩. 아주 커다란 물건이 지속해서 트럭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 아니면 공사하는 소리이거나. 하나의 덩어리로 엉겨 붙은 듯 정확히 구분할 수 없는 소리가 잠을 깨웠다.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부르르르릉. 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소리. 툭턱. 둔덕을 넘어가는 소리. 에에에에엥 공기를 찢듯 고음으로 울리는 사이렌 소리...


내가 뉴욕에서 머물고 있는 호텔 방은 2층에 있다. 블라인드를 올리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웅얼웅얼 말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깝다. 지나가는 사람이 갑자기 길을 멈춰 고개를 돌리고 나에게 말을 걸면 나는 그의 얼굴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럴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내가 머무는 M 호텔은 길게 줄지어 선 건물 중의 하나일 뿐이다. 거리를 채우는 하나의 배경이다. 배경 안에 있는 나는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그들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커튼으로 창을 가린다. 두툼한 암막 커튼으로 가리면 방안은 대낮에도 어둡다.


일부러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바깥소리가 들려온다. 한번 들려온 소리를 따라 계속 듣게 된다. 아무도 없는 방안의 적막을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채운다. 아끼는 동생이 뉴욕에서 사용하라며 소형 블루투스 스피커를 선물로 주었는데 깜빡하고 챙기지 못했다. 만약 스피커를 가져왔다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바깥소리를 덮을 수 있었을 텐데...나는 뉴욕 거리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화음을 배경음악으로 듣는다. 씽씽 자동차가 내달리는 소리, 덜커덩 기계 엔진 소리, 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내가 뉴욕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물론 뉴욕의 식당에서 듣는 재즈나 카페나 공원에서 듣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어들도 있다.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불어가 동시에 들려올 때 (아마 다른 언어도 있겠지만 내가 구분할 수 있는 언어만 적어 본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지닌 역동성을 체감한다. 언어와 언어 사이가 만들어내는 묘한 단절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전 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 100년 전에도 뉴욕은 지금처럼 들썩였다는 것을, 1920년대 성공한 뉴요커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문장을 읽으며 확인한다. ‘뉴욕은 어딜 가나 정신이 없어서 조용한 안식이란 것은 적어도 당분간은 찾기 불가능해 보였다’(『재즈 시대의 메아리』) 뉴욕은 어딜 가나 정신이 없지만 그나마 안식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내가 지금 머무는 뉴욕의 호텔 방이다.


M 호텔의 연식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호텔이 자리하고 있는 구역을 피츠제럴드가 거닐었다고 ‘추정’ 되는 것만으로 나는 창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가까운 소리들을 기꺼이 듣는다. 마치 심오한 의미를 지닌 소리처럼, 나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알려줄 소리인 것처럼 나는 호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음미한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뉴욕에서 머문 열흘 동안 가장 밀착해서 듣고 있는 뉴욕의 소리다.


M호텔에는 뉴욕의 다른 오래된 건물처럼 철제 지지대가 설치되어 있다. 창문에서 가장 가까이 보이는 것도 철제 기둥이다. 철제 기둥들 사이를 지날 때면 마치 다리 아래를 지나는 것 같다. 철제 지지대가 해를 막는 차양 역할을 하여 그림자가 진다. 창 바깥이 낮에도 빛바랜 듯 그늘진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철제 기둥이 서 있는 곳에는 어김 없이 물리적인 무언가가 가해져 기계음이 따라온다. 무언가 바꾸고 고치고 만드는 소리들. 그것이 크고 작은 공사라면 뉴욕은 언제나 공사 중이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뉴욕은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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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Room, Edward Hopper, 1931 / 어쩌면 그림 속 여인은 바깥의 소리를 고요히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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