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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의 기록 Jul 29. 2020

화양연화

회상의 미


이미지로 기억되는 영화가 있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2000)는 나에게 이미지다. 장만옥의 치파오이며 양조위의 눈빛, 그리고 두 사람의 반복적인 스침들. 하지만 무엇보다 <화양연화>에서 단 하나의 이미지를 꼽으라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다. 영화의 맨 마지막 양조위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의 구멍에 비밀을 봉인하는 장면.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의 목젖이 움직이는 장면이 클로즈업되면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비밀은 그렇게 봉인된 채 그곳에서 살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그 이후로 나는 말 못 할 일이 있을 때 마음속에 사원을 짓는 기분이 들곤 한다.


영화 <화양연화>를 떠올린 건 한병철의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비롯되었다.       


‘회상의 미' 챕터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발터 벤야민은 기억을 인간 실존의 정수로 높이 세운다. 기억은 또한 미의 정수다.'

비밀을 봉인하는 장면은 결국 기억을 봉인하는 것일 테니까. 그 봉인된 기억이란 '화양연화'.




화양연화_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1962년 홍콩. 상하이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같은 날 두 가구가 이사 온다. 홍콩 지역신문사 기자 차우(양조위) 부부와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수 리첸(장만옥) 부부다. 아파트의 공동 복도가 좁은 탓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양조위와 장만옥은 이사 온 날부터 서로 알게 된다. 옆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지금의 이웃 개념과는 다르게 1960년대 홍콩의 아파트 이웃은 언제 외출하고 들어오는지는 물론 시시콜콜한 집안 사정까지 알고 지낸다. 양조위의 아내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고 장만옥의 남편도 해외출장으로 자주 부재중이라는 사실까지도.




혼자서 밥을 먹던 날이 많던 그들은 어느 날 같이 식당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의심하고 있던 일들을 서로에게 묻는다. 차우는 수 리첸의 핸드백이 아내와 똑같다는 것을, 수 리첸은 남편의 넥타이가 차우 것과 똑같다는 불길한 사실을 확인한다. 차우의 아내와 수 리첸의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차우와 수 리첸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실과 혼란스러움 앞에서 상황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은 연극을 한다. 상대의 배우자가 되어서 연기를 한다. 배우자가 있는데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그것이 가능한지. 수 리첸은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그런 짓을 저지르는 그들과 달라요.’




하지만 수 리첸과 차우는 점점 가까워진다. 배우자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상실감을 공유하는 사이라서, 서로가 느끼는 슬픔은 다른 이들과 쉽게 나눌 수 없는 것이라서 슬픔을 나누는 건 둘만의 일이 된다. 혼밥 하던 그들이 같이 밥을 먹는 일이 잦아지면서 가까워진다. 하지만 차우와 수 리첸은 ‘그들과 다르기’위해서 사랑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도덕관념에서 비롯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폐쇄적인 아파트 구조로 사적인 공간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cctv는 없지만 이웃들의 눈이 cctv나 다름없다. 마치 이웃은 수 리첸의 시모나 엄마처럼 일찍 다니라며 훈수하고 수 리첸은 그러한 간섭을 당연하게 여긴다.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좁은 아파트 구조에서 두 사람은 그들의 만남이 들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차우는 결혼 전 쓰다만 무협지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 리첸은 그가 쓴 글을 읽는다. 그녀가 가장 활짝 웃는 장면은 그가 쓰는 무협소설을 읽으며 음식을 시켜 먹을 때다. 두 사람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장면이다. 그는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쓰듯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우리는 (외도를 한) 그들과 다르다'며 선을 긋는다. 선을 긋는다고 해도 감정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그들은 어느새 너무 가까워졌다. 차우는 말한다. 싱가포르로 떠나겠다고. 그래서 차우와 수 리첸은 이별연습을 한다. 각자의 배우자가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연극했던 것처럼 이별 연극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 알게 된다. 이별연습은 그들의 사랑만 확인해 줄 뿐이라는 것을.




그들의 사랑은 배우자의 외도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배신감, 상실감, 슬픔, 외로움이 두 사람을 이어주지만 그것이 사랑일까? 상실감을 뼈저리도록 체험했기 때문에 나(우리)만큼은 너희들처럼 그런 배신감을 안기는 똑같은 사람이 결코 되지 않겠다는 도덕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닿지 않는 혼잣말을 할 뿐이다.
 
티켓 한 장이 더 있다면 나와 함께 가겠소? (차우)
내게 자리가 있다면 내게로 올 건가요? (수 리첸)

두 사람의 사랑은 상실감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슬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묻게 된다. 진정 그때가 화양연화였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서 사랑할 수 없는 현실, 끝내 사랑을 부정해야 하는 현실, 과연 ‘화양연화’인가...?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은 화양연화가 아니다. 오히려 슬픔으로 가득한 시간. 하지만 그 시간은 '화양연화'로 기억된다. 어떤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하다.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그때가 '화양연화'였구나, 하는 깨달음.  

미는 망설이는 자이며 늦둥이다. 미는 순간적인 광휘가 아니라 나중에야 나타나는 고요한 빛이다. 이런 신중함 덕분에 미는 품위를 지니게 된다. 즉각적인 자극과 흥분은 미로 접근하는 길을 막는다. 사물들은 우회로를 거쳐 사후에야 비로소 그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그 향기로운 정수를 드러낸다. 미는 오랫동안, 천천히 걷는다. 즉각적인 접촉에서는 미를 만날 수 없다. (『아름다움의 구원』, 110쪽)


봉인된 비밀 혹은 기억
 

차우는 지속될 수 없었던 화양연화를, 비밀을 묻으러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 간다. 굳이! (힘들게) 왜 앙코르와트까지 가야 하는가. 비밀을 묻는 하나의 의식을 위해서. 그는 벽에 있는 구멍에 대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한다. 그는 화양연화의 시간을 봉인한다. 마치 비밀에 방부제를 입히듯 영원히 부패되지 않을 ‘아름다운 시절’로 간직하고 픈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구멍 안에서 화양연화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그가 굳이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까지 가서 비밀을 봉인하는 의식은 중요하다.
 
왕가위 감독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설정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현실화되기 거의 불가능한 장소였으니까.
 
앙코르와트처럼 비현실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면, 영원한 봉인은 불가능하다. 어떤 식으로든 비밀은 발설되거나 봉인해제된다는 것. 차우가 과거를 묻었다고 하더라도 그 과거는 언제든 현재에 침입 할 수 있으며 살아있는 한 그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과거(비밀)를 묻는 의식은 과거의 무게로부터 해방되거나 이룰 수 없는 일에 대한 회환을 덜어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이자 몸부림이다. 봉인 의식을 통해 걱정인형에게 걱정을 털어버리듯 자신의 비밀을 털어버리기 위해서. 이루어질 수 없음에 대한 슬픔을 그렇게 그는 털어냈는지도 모른다.

‘신비로운 장소죠 건물 외벽에 조각된 그 모든 부조 장식들을 보면 딱 지금 그런 이야기, 수세기에 걸쳐 반복된 각종 인간사를 우리한테 들려줍니다. 양조위와 장만옥의 사정은 그런 이야기들, 그 모든 부조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죠.’ (『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그의 행위는 적극적 망각이자 기억이다. 망각하기 위한 기억의 봉인. 기억을 간직하기 위한 망각 의식. 그는 사랑의 상실로 인한 슬픔을 묻기 위해  망각 의식을 치르지만 그것은 동시에 기억을 위한 의식이다.
어쩌면 <화양연화>의 여백을 채우는 건 관객이 지니고 있는 각자의 화양연화가 아닐까. 우리의 화영 연화, 당신만의 그리고 나만의 화영 연화. 영화가 쓸쓸하게 느껴진다면 그때의 화양연화가 지금 없기 때문에. 사랑의 부재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옛 아파트를 다시 찾았겠는가. 어긋남의 미학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끊임없이 망설이고 신중해서 그들은 끝내 어긋난다. 하지만 어긋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기억이 된다.  
 
 
사랑할 기분 혹은 분위기_in the mood for love 
 

줄거리는 진부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는 분위기 덕분이다. 아니, 분위기가 전부다. <화양연화>의 영어 제목은 <In the mood for love>. 원제와 영어 제목의 의미가 같지 않지만 서로 보충해주는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는 사랑할 때다. 장만옥은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완벽한 헤어스타일에 몸에 빈틈없이 붙는 치파오를 입고 있다. 머리를 하는데 몇 시간 이상이 걸리고 90분 영화에 30벌 이상의 치파오가 등장한다. 거의 매 장면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온다. (반면에 양조위는 말끔한 양복차림이다.) 장만옥이 국수 통을 들고 걸어가는 장면에서 주제 테마곡(우메바야시 시게루의 유메지 테마)과 함께 리듬을 타는 데 그 한 장면은 영화를 보는 이유 전부가 될 만큼 매혹적이다.

왕가위는 말했다.


아름다운 걸 좋아해서 배우를 아름답게 찍는 게 아닙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답게 찍는 겁니다.



장만옥은 그저 국수 통을 들고 걸을 뿐인데 그저 그뿐인데! 눈부시게, 위태롭게 그리고 쓸쓸하게 아름답다. 그건 장만옥이 가진 고유의 매력에서 기인하지만 그 매력을 극대화하는 건 느리게 흐르는 영상과 음악 덕분이다. 


 
‘리듬은 카메라와 배우들 사이의 춤을 만들어냅니다. <화양연화>는 거의 뮤지컬이에요. 배우가 노래를 안 부른다 뿐.’ 관객은 영화와 함께 음악을 기억한다. 음악과 함께 영화를 기억한다.




영화 속 아름다움은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이느냐 이상의 문젭니다. 좋은 영화는 보고 난 뒤에 남는 맛이 있어야 해요. 어떤 한 장면일 수도 있고 한 줄의 대사일 수도 있고 그냥 어떤 한순간도 좋고요. 뭐가 됐든 관객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남는 게 있어야 합니다.




https://youtu.be/FzMHCalcf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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