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를 읽고
얼마 전, 가까운 분에게 엽서와 함께 책을 건넸다.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받기 힘들다고 느낄 때, 책이 자주 저의 손을 잡아주었거든요. 소개하고 싶은 책이라 드립니다.’
그리고 답장을 받았다.
'그동안 날 너무 그냥 두었나봐요. 고마워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챙기느라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는 말처럼 들렸다. ’마음 돌보기‘의 우선순위에서 자주 밀리는 내 마음은 쉽게 방치된다. 고장 난지도 모른 채 혹은 어설프게 덮어버린 채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질 때가 있다. 무너진 모습이 내가 생각한 나의 모습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달라서 감추다 보면 무너진 채로 시간은 흘러간다. 답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 아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시간이 있다. 내 몸과 마음이 도무지 따라주지 않을 때.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위대한 책들은 우리가 답을 요구하는 물음에 답을 하는 대신 우리에게 스스로 질문할 욕구를 불어넣는다(83p). 책에 답이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을 다르게 바꾸면, 책 속에 길은 없다. 책 속에 길이 없을 지라도, 좋은 책은 길을 찾도록 도와주고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나는 책을 통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무기력하게 있기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책을 선물한 마음도 비슷했다. 무너져서 어둠에 잠겨있기 보다 책과 함께 걸어 나올 수 있기를 바랐다. 비록 책이 드라마틱한 변화나 치유의 힘을 발휘하지 못할지라도 책을 통해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을 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문학상담은 철학상담과 더불어 인문상담학의 한 분야입니다. (...) 문학 텍스트가 지닌 강렬한 환기와 자극을 통해 사람들이 습관적인 일상을 벗어나는 체험을 하게하고, 나아가 과거의 편린들을 활용하는 예술적 활동을 통해 새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40p
문학 상담자 진은영 시인과 철학 상담자 김경희 교수가 함께 쓴,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는 문학이 가진 치유의 힘을 말한다. 문학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줄 수 있다고. 문학을 읽고 문학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을 너머 쓰기라는 능동적 읽기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문제를 새롭게 구성할 때, ’자존감을 높이고 새로운 자기 성장의 힘을 습득할 수 있다‘(40p)고 말한다.
문학이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면 문학작품을 생산하는 작가들이야말로 상처와 치유의 자정작용을 가장 잘 경험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지만 몇몇 작가들을 떠올리면, 문학이 가진 치유의 힘을 의심하게 된다.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강물에 빠진 버지니아 울프,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 오랜 우울증 끝에 목숨을 끊은 실비아 플라스. ’행복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박경리 선생의 말처럼 상처는 분명 문학으로 안내하는 중요한 입구지만,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시를 쓰지 않습니다. 60p) 문학이 늘 치유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는 문학이 가진 치유의 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문학상담의 이론을 바탕으로 쓰기의 실제를 소개한다. '시작을 위한 필사, 시인의 문장을 빌려서 표현하기, 사진과 함께 시 쓰기, 콜라주 시 쓰기, 몸에 대해 쓰기, 마음의 책 만들기' 등 마음의 무늬를 읽고 쓰는 열두 가지 방법이다. 자신의 문제를 쓸 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지 않을 수 있음을 역설한다. 소수의 사람만 향유하는 엘리트적 문학이 아니라 민주적 문학, '만인의 작가-되기' 과정이다.
우리는 쓴 것을 더 잘 잊습니다. 다시 기억하기를 원하면 노트를 펼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쓰기는 말하기보다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더 용이하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말할 때보다 무엇에 대해 쓸 때 그것이 자기와 더 분리되었다고 느낍니다. 말은 사라지지만 쓴 것은 객관적 대상으로서 내 앞에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87p
마음에 무늬가 없다면 어쩌면 이 책은 무용하다. 아무런 무늬 없이 반듯하고 깨끗하다면 문학 '상담'은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쭈글쭈글 구겨지고 주름진 내 마음의 굴곡들을 이 책은 어루만지고 있다. 나는 주름진 내 마음의 무늬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