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순 사실 나열 일기 2

일요일에 쓰는 일기

by 작은꽃

어제, 토요일에는 12시가 다 되어 잤다. 보통 주말에도 일찍 자는 편인데 어제는 낮잠을 4시간이나 자서 양심상 늦게 잤다. 오늘, 일요일 아침에는 눈떠보니 7시. 더 잘 수도 있었는데 화장실이 급해서 일어났다. 늙으면 방광의 근육도 약해진다고 들었다. 자면서 화장실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원래 나는 깨지 않고 잘 자는데...


요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늦여름과 가을사이. 늦어도 7시 전에는 산책을 나가야 선선하고 시간도 여유 있는데 오늘은 좀 늦지 않았나 싶어 나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래도 7시 20분쯤 집밖으로 나섰다.

공원은 나올 때마다 달리기 열풍이다. 정말로 열풍이다. 거의 준마라톤대회 수준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근처에 사는 선생님도 러닝을 열심히 하는데(본인 말로는 '유산소만 조진다'라고 했다) 저녁에도 달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뛰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걸었다. 이어폰 끼지 않고 멍하니 걷다가 생각하면서 걷다가 새소리 들으며 걸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건강해지고 있는 건가? 나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이니까 건강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겠... 지? 아니, 그건 모르는 거지. 나는 이미 경도인지장애가 아닐까? 벌써부터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은데...


내 아빠는 매일 신문 읽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했고 복근과 팔근육이 탄탄했던 분이었다. 그런 아빠가 70세가 조금 지나서 치매가 시작됐다. 그리고 급격하게 심해졌다. 아주 빠르게 가족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삼 남매 중에서 내가 아빠의 성향을 가장 많이 닮았다. 모든 것은 유전인데 나도 그런 인자를 가지고 있겠지.


누군가 간단한 손가락 운동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치매예방'에 좋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왜 '치매'라는 말에 웃음이 날까? 치매에 걸린 사람이 우스워보여서 그런 걸까? 실제 치매를 겪는 사람을 본다면 웃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환자를 지켜보고 돌보는 가족에게 치매는 지옥이다.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중증 치매가 되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안락사하고 싶다. 제발 우리나라도 안락사 합법화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는 내 의지가 통하지 않을 테니 미리 준비해 둬야겠지. 법적효력이 있게 하려면 뭔가 절차를 거쳐야 하던데, 그럼 나 진짜 치매 걸릴 것 같잖아. 그래도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최소한 연명치료 안 하겠다는 서류라도 만들어놔야겠다. 정말 사람일은 모른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 삶이다.


오늘은 평소 안 가던 새로운 길로 걸어보았다. 사람도 별로 없고 풀이 너무 많아서 황급히 되돌아왔다. 사람이 없으면 무섭다. 풀이 우거지면 뱀 나올까 봐 무섭다. 무엇보다 집에서 멀어지면 돌아가는 길이 지친다.


집 근처 스벅에서 따뜻한라떼숏으로 한잔 마셨다. 맛도 있고 나에게는 화장실 가는 수단이기도 하다. 요즘은 건강, 라이프스타일, 이너뷰티 비슷한 주제를 많이 본다. 내가 주로 보는 채널의 유튜버들은 20대, 30대인데 볼 때마다 기특(?)하고 놀랍다. 어린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걸 아나? 안다고 해도 저렇게 말로 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인데. 나는 25살에 뭐 했나? 35살에 뭐 했나?


요즘 <미키피디아>라는 유튜브를 보는데 그 유튜버분이 부자인 데다 한강이 보이는 유엔빌리지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영상에서 본인 집구경도 시켜줬는데 와... 정말 좋다. 부럽다. 질투 난다. 나는 그동안 뭐 했나? 근데 그분은 부자고 잘났고 똑똑한데 질투가 나서 꼴 보기 싫고 구독취소하고 싶고 그렇지는 않다. 그분이 잘난척하지 않고 유쾌하고 자신만의 멋진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아, 무엇보다 발음이 정확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잘해줘서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나도 저렇게 말해야지.


오늘은 낮 12시경에 이 일기를 쓴다. 오후 일정은 아마도... 아이들과 오목을 두고, 다이아몬드 게임을 할 것 같다. 틈틈이 집안 정리하고 청소도 할 것이다. 다이소 가서 숯을 사고, 올리브영에서 얼굴에 쓰는 붓을 사고, 마트에서 녹차를 살 것이다. 근데 오늘 마트 문 닫는 날. 녹차는 내일 사지 뭐. 아, 일기가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네. 녹차의 효능, 숯의 효능, 이런 거 찾아보는 거 좋아한다. 오늘 일기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1의 사회성, 오늘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