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생각의 나열
7시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호수공원 한 바퀴 돌고 스벅에서 꼭 블랙글래이즈드라떼를 마셔야지!라고 며칠 전부터 계획했다.
걷기는 정신건강에 참 좋다. 귀에 뭐 꽂지 않고 멍하니 걷는 것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치유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도 맑고 바람도 시원해서 걷기에 최고다.
달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도 달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운동이 너무 안 되는 것 같잖아. 아니, 나는 주 3~4회 근력운동 하는 사람이야. 조바심 내지 말자.
불과 1,2년 전만 해도 나는 헬스장을 싫어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아저씨들이 땀 흘리며 헉헉 거리는 곳이었다. 사는 게 노동이고 고통인데 왜 굳이 저 무거운 것을 들었다 놨다 하는가.
그걸 이제 내가 하고 있다. 다음 운동부터는 레그프레스 무게를 올려야지. 최소한 45파운드+ 12회+ 5세트 해야지, 이러고 있다. 그리고 남편도 피티를 받게 했다. 이 좋은 걸 나만 할 수는 없잖아.
남편이 건강해야 내가 편하지 않겠나.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많이 살았나?) 이만큼 살아오며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을 했다. 그것도 많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이래서 '절대'라는 말에는 신중해야 한다.
<절대 하지 않을 줄 알았던 것>
* 일찍 결혼하는 것
* 애 낳기(사실 이건 절대까지는 아니었다)
* 애 셋 낳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 끙끙 거리며 무거운 거 올렸다 내렸다 하기
* 아이들 사교육에 돈 엄청 쓰는 것(첫째가 무용을 하고, 둘째는 자꾸 학원 보내달라고 한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것>
*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는 것
* 눈가와 팔자 주름, 흰머리
* 내 아이 학교 선생님이 화나서 전화하는 것, 그것도 몇 번
* 여성기관에 여러 혹 때문에 호르몬제를 먹어야하는 일(아직 고민 중)
* 집에 들어가기 싫을 정도로 애가 꼴 보기 싫은 것
* 내 아이가 예체능 전공을 하는 것
* 서울 여기저기 운전해서 돌아다니는 것
* 집 사고파는 것으로 전전긍긍하는 것
이런 일들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절대 하지 않겠다, 나한테는 그런 일 없을 거야, 했던 일을 겪으며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라도 의미를 찾아야지... 에휴. 인생 별거 있나. 고행이 사는 것의 디폴트고 편안함과 행복은 아주 잠깐이다.
덕분에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에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 뒤돌아보며 '그때가 좋았지' 하며 후회만 남는다
뭐 딱히 좋은 일도 없고 나이만 먹고 해 놓은 것도 없는 것 같아 우울할 때도 있지만,
사실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그 밖에도 감사할 일이 천지다. 괴롭지만 그래도 걷고 말하고 보고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결국 감사일기인가. 뭐 어때. '결국 감사한다'는 것은 좋은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