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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1의 사회성, 오늘 신문

초1 담임의 생각

by 작은꽃

2025. 9. 13. 토. 동아일보 기사다. 동아일보를 4년째 구독하고 있다. 부자들이 종이신문을 본다고 들었다. 종이신문 구독하고 보는 것 정도는 나도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다. 토요일에는 한 면에 하나의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섹션이 여러 개 있다. 오늘 내가 관심 있게 본 기사는 이것이다.


https://www.donga.com/news/It/article/all/20250912/132378909/2


자녀의 사회성, 초등학생 전후 아이의 사회성을 다룬 기사다.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맞아맞아'를 여러 번 외쳤다.


10년 전에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3번 했고, 현재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다. 초1 담임은 거의 모든 학교에서,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기피한다. 첫째 이유는 아이들과 말이 안 통해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 둘째는 학부모와의 관계 때문이다.


10년 전에도 그랬지만 해가 갈수록 심해진다고 느끼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 가장 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들의 '자기중심적 성향'과 학부모들의 '내새끼지상주의'다. 학교선생이 학부모들 욕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다. 나도 학부모라서 내새끼지상주의적일 수 있다. 내 허물은 못 보고 남의 허물만 보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나는 내 허물도 보고 남의 허물도 보는 것 같다.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시선에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자 학부모로서 느낀 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아래 기사에 형광펜 칠한 부분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서툴지만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을 쌓아야 아이가 자립할 수 있다. 부모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버리면 아이들은 갈등을 학습할 기회를 잃게 된다


좌충우돌해 봐야 자립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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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를 들어보겠다. 우리 반에 A라는 아이가 있다. 올해 4,5월쯤, A라는 아이의 어머님께서 전화로 B와 C라는 아이로 인해 우리 A가 무척 힘들어한다고 했다.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계속 말로 놀린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인지는 A가 잘 말해주지 않는데, 그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인해서 우리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 전학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담임인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머님 얘기를 듣고 지도하겠다, 아이들과도 얘기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B, C와 따로 상담을 했다. B는 A(남자)에게 '너 치마 입고 와라'라는 말을 했다고 인정했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C 역시 A에게 장난을 했는데 그게 놀린 것 같기도 하다고 인정했고 앞으로 A를 놀리지 않겠다고 했다. A와는 여러 번 얘기를 했다. 어떻게 괴롭혔냐고 물을 때마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A는 B와 C가 사과를 안 했으니 사과를 하게 해 달라고도 했다.


들어보니 심하게 놀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끼리 장난처럼 지나가는 말이었던듯했다. 하지만 A가 느끼기에 그게 학교에 오기 싫을 정도로 싫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담임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했다.


B와 C는 그 후로 A와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A는 계속해서 친구들이 자기를 놀린다, 괴롭힌다며 나에게 '혼내달라'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반 다른 아이들이 A의 말과 행동을 나에게 이르는 일도 잦았다( 1학년 아이들은 정말 많이 이른다. 학기 초에는 선생님을 1인당 평균 20번은 부르는 것 같다). A도 교실과 복도, 급식실에서 뛰고, 친구들과 투닥거리는 일도 있었다. 누구든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 자신에게 거슬리면 '잘못된'행동이라고 느끼는 건가?


A어머님은 A에 관한 일로 여러 번 전화하셨고, 대면 상담도 두 차례 했다. B와 C가 말로 폭력을 한 것이 아니냐, 학교 폭력 신고하려고 한다, A아빠도 화가 많이 났다,라고 했다. 한 번은 아이가 너무 힘들어한다며 울기도 하셨다.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A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큰 갈등은 없었다. A는 학교에서 잘 웃고 떠들고 뛰어다녔다. 아이를 관찰하고 상담하고 친구관계에 대해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 자리를 떨어뜨려 놓는 것 외에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이런 패턴이 계속된다면 전문기관의 치료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A어머님은 결국 상담기관의 상담, 학교 위클래스 상담을 하고 계신다). 나는 B와 C가 이제 A를 놀리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다, 교실에서는 A도 다른 아이들한테 조금 거칠게 말하는 편이다,라고 A의 어머님께 말했다. 문제 행동을 말 안 하면 나중에 그때는 왜 말 안 했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니 팩트 위주로 학부모에게 아이의 문제행동에 대해 미리 말하는 것이 좋다. 어머님이 아주 날카롭게 대응하셨다. 우리 애가 괜히 그러는 것처럼 말한다고. 이렇게 문제행동을 말하면 학부모는 물론 싫어한다... 그 후, 15센티가량의 긴 문자를 받았다(나중에 A어머님은 본인이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했다며 사과하셨다).


A어머님이 너무 힘들어하셔서 B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상황이 이러하니 B와 얘기를 해보시면 좋겠다, 제가 볼 때는 큰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B어머님도 가정에서 지도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이렇게 말씀드렸다. B어머님도 흔쾌히 알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흘렀다. B가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과 갈등이 여러 건 발생해서 그것을 말씀드렸다. 아울러 학교에서 상담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 번 받아보시면 어떻겠나 권유했다. B는 학기 초에 실시했던 정서행동특성검사 때 관심군과 일반군 사이에 아슬아슬한 결과가 나왔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B어머님으로부터 10센티가량의 긴 문자를 받았다.


B어머님과 통화를 했다(아... 이럴 때 정말 전화하기 싫다). B어머님은 우리 B도 예민하고 연약한 아이다, 다른 아이들 때문에 상처받는다, 선생님이 B한테 도대체 뭐라고 말한 거냐, 그렇게 지도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선생님 말에 아이가 상처받는다, 우리 애 미워하는 거 아니냐, 왜 우리 애가 문제 있는 것처럼 말하냐, 왜 피해자가 상담을 받아야 하냐, 우리 애도 A 때문에 상처 많이 받고 있다,라고 하셨다.


미워하면 상담받으라 마라 이런 말도 안 한다. 상담받으라고 전화해야지, 서류받아야지, 시간과 장소 조율해야지 나도 귀찮다. 서로 상대 때문에 내 아이가 상처받는다며 화를 낸다. 내 아이는 잘못이 없고, 그 아이만 잘못이다.


학부모들은 사과의 방식에 큰 의미를 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얼굴을 보고 '미안해, 앞으로 안 그럴게'라고 사과하는 것을 강조한다. 아이들끼리는 이미 마음이 풀렸는데, 학부모들이 왜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느냐, 왜 교사가 사과하라고 시키지 않느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놀렸던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을 멈추거나, 지우개를 빌려주거나 하는 것으로는 넘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 그럴 수 있다고 하자. 그럼 이건 어떤가. 쪽지를 써서 과자를 건네주는 것도 사과가 되지 않는다. D가 E에게 여러 과자를 담아 쪽지를 붙여 건네주었다. E는 신나게 과자봉투를 받아 웃으며 뛰어갔다. 다음날, 과자가 다시 돌아왔다. E가 '엄마가 받지 말라'라고 했다며 과자를 나에게 돌려주었다. E의 아버지는 그것은 사과가 아니다, 왜 말로 하지 않고 이런 식인 거냐며 E엄마가 무척 화가 났다고 연락을 해온 적도 있다.


얼굴을 보고 '미안해, 앞으로 안 그럴게'라고 말해야 사과라고 생각한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정식으로 사과를 받아내야 하는 건가. 작은 다툼은 '정식 사과'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아이들끼리 화해하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니까 잘못한 것에 분명히 사과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도 한다. 꼭 얼굴을 대면하고 '미안해'라고 말하지 않아도 용기 내어 마음을 표현했다면 괜찮지 않을까. 1학년 아이들에게 얼굴을 보고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상황이 참으로 애매할 때가 있어서 '사과하라'라고 강요하거나 다그칠 수 없다. 아이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면 그것은 충분한 사과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잘못하고도 어물쩍 넘어가자는 것이냐라고 반박할 수 있다. 큰 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소한 갈등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갈등을 다 따지면서 아주 작은 상처도 용납하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완고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당했으니 일일이 하나하나 집어서 정식으로 사과를 받는다면, 내 아이가 잘못했을 때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위에서 말한 내용은 대표적인 사례일 뿐 비슷한 일은 많다. 1학년 아이들, 특히 학부모님들이 상담해 오는 문제의 대부분이 아이의 친구관계, 아이친구 엄마와의 관계다. 아이 할머니와 다른 집 아이 할머니와의 관계까지 있다. 가장 흔한 사례이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다. 아이가 상처받는 것은 내가 상처받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다.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예민하고 소심한 엄마로서 많이 겪어봤다. 하지만 지나갈 것은 지나간다. 겪을 일은 겪게 놔두어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도 나도 성장한다.


같이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부디 학부모님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금만 이해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교사가 중간에서 다 말하지 못하는 양쪽의 사정이 있다. ADHD, 가정의 불화, 한부모 가정,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다. 게다가 남의 자식만 잘못한 것이 아니다. 내 자식도 다른 애들 놀리고, 뛰고, 수업시간에 떠들고 다 한다. 한 번만 입장을 바꾸어, 시간을 두고 바라봐주시면 어떨까.


아이들의 깊은 상처를 그냥 놔두자는 말이 아니다. 감당 가능한 상처는 아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란다. 특히 1학년 아이들 사이 일이라는 것이 심각한 것은 거의 없다. 아이들끼리는 금방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간다. 부모님들이 개입하여 문제가 커지는 일이 거의 대부분이다.


한 발짝만 물러나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조급해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조금만 지켜보시기를 바란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아이의 상처가 크지 않다면, 이 정도면 괜찮다 싶다면 지켜봐 주는 것이 좋다. 초, 중, 고 내내 이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때마다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 줄 건가? 사회에 나가서는?


1학년 학부모의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과 불안을 이해한다. 충분히. 그러나 아이들은 학부모들의 생각보다 학교에서 꽤나 잘하고 있다. 아이를 믿어주시라. 내가 장담할 수 있다. 시간과 함께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아이를 믿고 지켜봐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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