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인 중학생 이야기
너무도 사실적인 여중생들의 관계 이야기.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인공 다현이와 같은 경험을 해보았을 것 같다. 심하게는 아니더라도 은근히 따돌려지고 소외되는 경험을. 최소한 아람이 친구들 무리와 같은 아이들을 학교 다니면서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나도 나와 맞지 않고 함께 있으면 불편한 아이들 사이에 굳이 끼려고 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랬나 창피할 뿐 아니라 나 자신이 한심하다.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아깝기 그지없다.
대학교 때까지도 나는 남의 눈치를 좀 많이 살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학교 식당에서 간단하게 밥 먹고 남는 시간은 조용히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정리하거나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같이 어울리던 무리는 굳이 택시까지 타고 나가서 비싼 밥을 사 먹고 두세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다음 수업 시간에 맞추기 위해 급하게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 바로 오고 싶은데 특별한 이유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휩쓸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시간을 낭비했다. 싫으면 나 혼자라도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는데 굳이 무리에 섞여있으려고 했다. 그게 좋지도 않으면서. 소외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나는 주인공 다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다현이는 나보다 훨씬 낫다. 다현이는 마지막에 당당하게 할 말 하고 그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주변환경을 만들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계속 꾸역꾸역 어떤 무리에 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학년이 바뀌거나 졸업을 해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이야기 속 은유는 더 대단하다. 이유 없이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자기 갈 길을 간다. 은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은유처럼 의연하고 싶었다. 나이 40이 한참 넘은 지금도 여전히 은유 같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학교(교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반반 섞어놓은 분위기였다)라는 단체생활을 벗어난 후에 나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해방된 기분이었다.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나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앞으로도 꾸준히 연습할 일이다.
아, 그런데 우리 집에 여자애만 세 명인데... 걱정된다. 중학생 첫째는 친구들 사이의 갈등을 작게 몇 번, 크게 한 번 겪었다. 작년에 담임했던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미묘한 관계를 보았다. 현재 1학년 일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도 벌써 권력관계와 애증이 드러난다. 아이들이 다현이보다 은유를 닮았으면 좋겠다. 다현이 같더라도... 받아야 들여야 할 것이다. 다현이처럼 경험하고 성장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