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지음, 타인에 대한 경계와 편견
긴 소설 말고 짧은 소설을 듣고 싶었다. 녹나무시리즈가 워낙 길었기 때문에(물론 재미있었다) 이번에는 짧은 소설을 찾아봤다. 그때 마침 성해나 작가의 소설이 눈에 띄었다. 러닝타임도 2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무척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이것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망설임 없이 듣기 시작했다.
주인공 여자 재서는 경산시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건축과 학생이다. 여름방학에 이본이라는 같은 과 학생과 문교수의 써머스쿨에 참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재서는 대체로 생각이나 행동이 명확하지 않다. 말투부터 과선택, 과제할 때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 등.
반대로 이본은 뭐든 똑 부러진다. 재서 눈에는 더욱 그렇게 보인다. 조금 재수 없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본이 그리 싫지는 않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내 관심이 갔던 부분은 재서의 애매모호함, 이본과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추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소 재서를 닮은 것 같다. 큰 결정은 명확하게 하는 편이고 호불호도 확실한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나의 취향과 생각은 주로 회색지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 이쪽 말도 맞고 저쪽 말도 맞다, 감정에 이끌려 딱 잘라말하지도 못하고 어중간하게 처신하기도 한다.
강하게 이끄는 사람(이본처럼)이 있으면 특별히 내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따라가는 편이다. 그러면서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동경하기도, 질투하기도 한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며 뭐든 명확해 보이는 상대를 불편해하면서 거리를 둔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궁금해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우연한 어떤 기회에 서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도 하는 그런 상대.
나는 재서이고 상대는 이본이라 생각하며 이야기에 젖어들었다.
학교와 직장, 그밖에 여러 사람을 만나는 곳에서 이본과 같은 사람을 자주 만나온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가졌던 편견과 경계심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도 된다, 의도적으로 풀고 싶다, 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내가 재서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가 이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