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꽃 Apr 16. 2024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_정아은

그런데 나는 왜 쓰는 걸까 feat. 질투의 화신

나는 왜 쓰는 걸까 feat. 책방지기를 질투하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정아은)을 읽고.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글쓰기 수업 선생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선물 받은 책. 블라인드북이라고 해서 마지막 수업 날에 작가님이 나에게 맞는 책을 직접 골라주었다.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선물을 받게 되어 기뻤다.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받게 된 것도 행운인데 그 작가가 나를 생각하며 책을 골라 주다니! 그것도 읽고 싶었던 책을 딱 맞게 선물해 주다니 얼마나 영광인가!


   내가 쓴 글에 작가님이 피드백을 줄 때 자주 느낀 것이 있다. '이분은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왔나?' 선생님은(책방 주인이자 작가님) 내가 쓴 글을 읽고 종종 나의 성향과 감정을 파악하여 말해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래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나보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무형의 것들, 예를 들어 말, 글, 춤, 표정, 행동, 바이올린 연주 같은 악기 연주 등은 대체로 그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보여준다. 나는 아직 미숙해서 연주나 글을 보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만들어내는 유무형의 소산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안다. 


  내가 쓰는 글 속에 다음 책을 내고 작가로 살고 싶다는 나의 열망이 드러나 있었나 보다. 내 속내를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그런 소재로 글을 쓴 적은 없었다. 『엄마는 개인주의자』라는 책 제목을 들어보았는가? 아마 못 들어봤을 것이다. 내가 쓴 나의 첫 책이다. 안타깝게도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조용히 묻혔다. 그래도 나는 계속 글을 쓰고 다음 책을 내고 싶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책이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현직 작가로 살면서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못 나갔던' 이야기와 ‘찌질한’ 부분을 말하는 사람이 있나? 있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이라는 책에서 장강명 작가가 그렇다. 진지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이런 것까지 말해도 되나 싶을 만큼 사소한 일상과 변변치 못한 자신의 모습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도 다 한다. 이 책도 무척 재미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그래도 둘 중의 하나의 책을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를 고르겠다. 왜냐하면 아이가 둘 있는 여성 작가가 쓴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다 걱정이 됐다.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작가인데, 이렇게 다 써버리면 주변의 사람들이 의식되지 않을까? 불편하지 않을까? 나중에 사람들이 뒤에서 흉보면 어떡하려고? 나야 ‘듣보잡’이니까 솔직하게 쓴다지만 ‘정아은’은 알려진 작가인데……' 그런데 작가는 딱 그것을 쓴다. 말하고 싶지 않고 창피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그것을 써야 사람들에게 공감 받는 진짜 에세이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그런 얘기를 써야 합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세계, 속속들이 치부를 알고 있는 징글징글한 세계, 잘못 썼다가 호되게 질책을 받을까 봐 무서운 세계, 밤이나 낮이나 내 머리를 점령하고 있는 골치 아픈 세계. 그런 세계에 대해 써야 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도 다짐했다. 쓰고 싶지 않은, 감추고 싶은 그것을 쓰자. 그것을 써야 독자가 공감하고 나 자신도 떳떳한 에세이가 된다. 


  책에서도 언급했는데 작가라면 모름지기 후광을 가지고 있다. 확실히 있다. 특히 이렇게 이름 대면 알만한 작가나 많이 팔린 책을 쓴 작가라면 최소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은 분명히 우리와 다른 뭔가가 있다'라고. 작가는 오라나 후광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저자는 자신의 구질구질해 보일 수 있는 면까지 다 보여준다. 그래서 책이 재밌고 작가는 매력적이었다. 


  출판사에서 애써 쓴 글이 까이고 괴로워하는 모습, 글이 자꾸 거절당하는 것에서 오는 무력감, 모객이 되지 않아서 북토크가 취소된 일, 잘나가는 작가의 대타로 행사에 나간 일, 다른 작가에 대한 질투 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나는 이마저도 부러웠다. 그래도 계속 책을 내고 행사에 초청받고 정아은이라는 작가를 보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까이던 와중에도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을 내고 여러 독자를 만나 위로받았으며 자존감을 높이는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아, 역시 이름난 작가는 이렇게 풀리는구나. 다른 잘나가는 작가를 질투하는 정아은을 질투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질투와 허영의 화신이라고 하는데 아마 나를 보면 고개를 숙일지도 모른다. 나야말로 '질투와 허영의 화신'이다. '첫 책이니까, 나는 전업 작가도 아니니까'라고 애써 스스로 위로 해보려고 하지만 소용없다. 첫 책임에도 불구하고 대형서점에 떡하니 누워있고(세워져서 다른 책들 사이에 껴있지 않고), 그 책으로 여기저기 강의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럴 땐 내 처지와 비교하며 질투가 끓어오른다. 왜 나만 빼고 다 잘나가는가. 


  이 책을 선물해 준 작가이자 글쓰기 선생님도 부럽고 질투가 난다. 연봉 높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인생 처음으로 낸 소설이 대박 났다. 외국으로 판권이 팔려나가고 돈도 많이 번 것으로 알고 있다. 거기다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데 그곳은 보자마자 내가 소유하고 운영하고 싶었던 바로 그런 공간이었다! 누구는 저렇게 잘나가는데 나는 겨우겨우 책 한 권 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네? 질투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나는 뭔가 싶다. 다행히 질투는 짧게 끝난다. 질투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 노화와 함께 질투의 힘도 약해지는 것 같다. 동시에 긍정적인 생각이 빈자리를 채운다. 나에게도 곧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북토크를 하고 청중은 모두 내 말에 몰입할 것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하며 스타일도 세련됐다고 나를 부러워할 것이다. 내 이야기에 사람들은 공감하고 어쩌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북토크 후에는 친절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독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묻고 나의 사랑스러운 사인을 해줄 것이다. 


  저자는 저자 자신과 나 같은 사람들의 그 애매한 부분에 대해서도 책에서 언급한다. 잘나가는 작가와는 혹시라도 '이권을 노린다는 인상을 줄까 봐 두려워서' 연락을 안 하게 되고, 자기보다 출판사 구하기가 어려운 작가에게는 자신이 배부른 소리 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다고. '내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그리고 스스로는 극소량이라고 매우 못마땅해하는 인지도를, 나보다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다른 동료 작가는 대단히 큰 것이라고 여기며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말을 책에 쓸 수 있다는 것이 또 부럽고 질투가 난다. 나는 언제쯤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아마도 출판사에서 수십 번은 까여야 그런 기회가 올 것이다. 


  '탄생의 비밀이 죽음에 있고, 사랑의 비밀이 이별에 있듯, 작가라는 직업의 비밀은 '거절'에 있었다'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거절의 쓴맛을 충분히 느껴보지 못했다. 저자는 되는 데로, 닥치는 데로 어떤 글이든 쓰고 글쓰기를 위한 밀도 있는 시간을 한참 보내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궤도에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도 피땀 눈물로 쓴 글이 거절을 당하는 것이다. 거기다 작가가 된 후에도 동료 작가와의 비교, 잘나가는 동료 작가에 대한 질투, 그리고 '그렇게 비교당하는 현장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환한 표정 유지하기'도 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닥치는 데로 써보지도 않았잖아? 나는 그렇게까지는 안 당해봤잖아? 그 정도는 당해봐야 ‘정아은’ 작가 정도 수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라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런데 나는 왜 쓰는 걸까?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돈 되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혼자 이렇게 발을 동동 구르고 애를 태우고 애면글면하는 이유가 뭘까? 왜 다음 책을 내고 싶은 걸까? 정아은 작가처럼 잘 팔리는 책을 여러 권 내는 사람도 거절당하는 것이 일상이고 다른 작가들과 비교당한다는데 나는 무슨 배짱으로?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니고 미물 중의 미물인데. 정아은 작가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큼도 되지 않는데! 저자는 글을 쓰는 이유가 '인정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도 격하게 동의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작가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글을 써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글이 쓰고 싶기 때문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야구선수가 되고 싶고,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고,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발레리나가 되고 싶듯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작가가 되고 싶다. 책 출판까지 가는 과정과 그 후에 구차한 일을 당하고, 내가 쓴 책이 겨우 100권 정도밖에 안 팔려도, '그래도 책 한 권 낸 작가라는 사람'이 인스타 포스팅에서 '좋아요'를 13개밖에 받지 못해도, 나는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다. 쓰고 싶은 마음 때문에 쓰는 것이다. 그것이 쓰는 사람의 핵심이고, 쓰는 사람의 전부다.'


  그래서 지금 나도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부지런히 책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을 쓸 것이다. 누가 알겠나. 내가 언젠가 정아은 작가처럼 작가가 된 과정과 작가로서의 생활을 에세이로 내게 될지. 제목은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저 같은 사람도 작가가 되었습니다' 정도면 어떨까. 



*책에서 인용한 문장은 작은따옴표로 표시하였습니다. 


요즘 필사하는 정아은 작가의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책.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필사. 


2024년 3월 

작가의 이전글 productive day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