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감동인 영화, 모든 장면이 나를 위한 것 같았다.
어제, 일요일 오후 아이들과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았다.
언제 이 영화를 처음 봤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약 20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동네 도서관에서 영화CD를 빌려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었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도서관은 정말 최고의 놀이터였다. 자주 가지 못해서 그렇지 도서관은 여전히 그렇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책임은 별로 없고 자유만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 나는 분명히 '사는 게 힘들다' 라든가 '인생은 힘든거야'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떠올리면 어이가 없고 웃음밖에 안 나지만 그때는 그랬다.
처음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 줄곧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어제,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처음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던 장면은 후반 두 장면이었다.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탄광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 그리고 몇 년 후 성인의 몸이 된 빌리가 날아오르는 모습. 너무도 대조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에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 전부분은 대충 스토리만 기억나고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는데 어제 보니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영화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하며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탄광 마을 더럼에 사는 11세 소년 빌리의 성장기이다. 동네 권투장에 다니던 빌리는 권투가 아닌 발레에 흥미를 보이는 빌리, 탄광 노동자로 살면서 파업에 동참하며 아버지와 형, 치매가 있는 나이 많은 할머니 넷이 산다. 엄마는 돌아가셨다. 예상하다시피 집안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다. 발레에 재능을 보이는 빌리를 알아본 윌킨슨 부인은 그가 로열발레스쿨에 오디션을 보도록 돕는다. 하지만 그 과정이 참 어렵다.
20년 전에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생판 모르던 남자를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딸을 셋 낳았는데 그 중 첫째아이가 성깔이 아주 장난이 아니다. 불안이 높고 예민해서 키우기가 힘들다 못해 괴롭다. 애기 때는 귀엽기라도 했지.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그 아이를 발레를 한다는 것이다. 유치원에서 재미로 배우던 것이 초등학교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다. 아이가 발레를 무척 좋아했고 3학년부터는 '전공'이라는 말을 가끔 하기 시작했다. 일단 소위 예체능 전공은 집안이 부유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은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어 그 재능이 차고 넘쳐 선생님에게 '발레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에서도 빌리의 재능을 알아본 윌킨슨선생님이 빌리에게 오디션을 보라고 먼저 권하고 무료로 레슨까지 해준다.
그런데 내 딸은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순전히 자신의 의지와 흥미에 끌려 발레를 전공하고 싶어했다. 어설픈 재능으로 예술을 하는 것은 뛰어난 천재 예술가들의 들러리만 하고 투자한 돈도 뽑지 못하는 '가성비'떨어지는 일이었다. 사실상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다른 문제는 예체능을 하는 아이에게 부모는 현금지급기이자 로드매니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드매니저까지는 아니어도 현금지급기는 피해갈 수 없다. 레슨비, 작품비, 주기적으로 들어가는 포인트슈즈, 레오타드는 상당히 부담되는 금액이다. 게다가 나는 애가 셋이지 않은가. 한 아이에게 '몰빵'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런 나였기에 빌리아빠에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빌리가 아빠가 내가 50펜스를 벌려고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데 너는 발레나 하고 돌아다니냐고 할 때, 빌리의 춤을 보고 씩씩거리며 한걸음에 윌킨슨 부인에게 한 첫마디는 "학비가 얼마입니까?" 빌리는 런던에 있는 로얄발레스쿨로 떠나고 아버지와 형은 탄광으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를 탄다.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장면 중에 이번에 봤을 때는 굉장히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었다. 빌리의 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가족들과 빌리의 모습이었다. 집배원이 편지를 들고 빌리의 집으로 향해 온다. 편지는 그대로 빌리가 올 때까지 식탁에 놓여있다. 할머니, 아빠, 형은 빌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빌리는 편지를 들고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읽는다. 밖에서 아빠는 안절부절못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뱉었다 담배를 폈다 껐다 하며 기다리다가 빌리의 방문을 연다. 빌리는 말한다. "합겨했어요."
우리 집 첫째가 예중입시를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집도, 특히 나와 첫째는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시험을 보고 5일 후에 인터넷으로 발표가 났다. 나는 결과를 혼자 집에서 확인해야 했는데 그것을 숨소리가 커지고 손가락을 벌벌 떨려 도저히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쿨한 남편은 "그럼 내가 확인할게"라고 말하고는 입시 발표 시간 10시에 확인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나는 일부러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해놓고 이어폰을 끼고 요가를 했다. 10시에서 몇 분이 지난 후, 집에 있는 유선전화가 쨍쨍하게 울렸다. 남편의 첫마디 "돈 준비해."
합격했으니 돈 준비하라는 말을 듣고 나는 당장 전화를 끊고 컴퓨터로 직접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합격'.
빌리가 아빠와 함께 로열발레스쿨에 오디션을 보러 가던 차안, 오디션 장에서, 그리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장면 장면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빌리와 아빠가 런던으로 버스를 타고 오디션을 보러 가는 차안에서 빌리가 아빠에게 묻는다. 런던에 가본 적이 있냐고. 아빠는 한 번도 런던에 가본 적이 없으며 더럼이라는 도시를 벗어나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아들 덕분에 생애 최초로 런던에 가는 것이다. 나도 우리 집 첫째 덕분에 나 혼자라면 가지 않았을 곳을 가보았다. 상명대학교, 건국대학교, 서울예고, 안양예고, 덕원예고, 예원학교, 선화예중에 콩쿠르를 위해갔다. 그 밖에 경기아트센터, 예중, 예고 무용 공연 관람을 자주 했다. 기동성을 위해 내가 직접 운전 해서 여기저기 다녔는데 땡글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위 학교들에 갈 일도 없었을 거고 발레 공연은 아예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전을 하고 서울 한복판을 낮이나 밤이나 운전해 다니고, 분장과 헤어를 위해 좁은 골목을 여기저기 차로 다니며 좁은 구석에 주차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땡글이는 내 스스로 절대 접하지 못했을 장소와 시간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여행이고 공부였다.
빌리가 발레하는 것을 반대하고, 우리가 그럴 처지냐며 발레가 도대체 왠말이냐며 반대하고, 학비를 걱정하고, 함께 오디션을 보러 가고 결과를 기다리고, 함께 합격을 기뻐하는 빌리 아빠의 모습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마음을 아프게 했고 보고 난 후에도 계속 떠오른다. 나와 닮아서 이기도 하겠지만 빌리 아빠 역을 맡은 배우가 몸도 탄탄해보이고 힘도 세보이고 잘생겨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빌리 형도 잘 생겼고.
영화의 단 한 장면도 빠뜨릴 수 없겠지만 가장 클라이막스라면 역시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탄탄한 발레리노의 몸을 가진 성장한 빌리가 백조의 호수의 주역이 되어 무대 뒤에서 등을 쫙 펴는 모습. 고개를 양쪽으로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하고 잠시 뒤 무대 위에서 날아오르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촉촉한 눈. 이 장면을 위해 그동안 빌리와 아빠, 형이, 할머니, 윌킨슨 선생님, 마이클까지 함께 이야기 속에 존재했던 것이 아닌가 싶을 명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