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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Apr 20. 2024

내가 싫어하는 말 1

놀린다,  공부시킨다, 보인다

   나는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많다. 좋아하는 것을 말해보라면 도서관, 혼자 티브이 보기, 라면, 국수, 산책, 걷기, 일찍 일어나 아침에 혼자 놀기 등이다. 싫어하는 것을 말해보라면 더 의욕적으로 말할 수 있다. 길에 침 뱉는 것(볼 때마다 저런 거 누가 안 잡아가나 싶다), 길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것 역시 저런 거 누가 안 잡아 가나 싶다),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그런데 나도 가끔 그런다), 남이 말하는 데 중간에 끊으면서 자기 말하는 것(이것 역시 나도 가끔 하는 짓이다), 같은 말 반복하는 것(이것도 내가 많이 하는 듯), 음식 나눠먹는 것, 밥 먹는데 입 안 가리고 말 많이 하는 것, 주식 떨어졌다고 징징거리면서 주식공부는 하지 않는 것, 세상에는 참 부자가 많은 것 같은데 나는 아니라며 한탄하면서 150만 원짜리 신발을 사는 것, 큰 소리로 재채기하는 것, 일하는 시간에 여럿이 모여서 피자 시켜 먹는 것 등등 계속 쓸 수 있는 데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자. 쓰다 보니 내가 싫어하는 것 중에 내가 하는 짓들도 좀 있다. 역시 내로남불인가 보다. 


   아무튼 나는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더 많은 사람이라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니 혼자 노는 것이 속편하다. 그래도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거슬리는 말들이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 엄마다 보니 아이 친구 엄마들과 얘기하거나 엄마들이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많이 본다. 그중에서 이건 어법에도 맞지 않고 이상한 표현이 아닌가 싶은 것들이 있다. 아, 물론 나도 어법에도 맞지 않는 말을 꽤 많이 쓴다. 그렇더라도 이건 좀 너무 하지 않은가 싶은 말들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1. 놀린다


  메롱메롱~ 하고 놀리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놀게 한다'는 뜻이다. 

'학교 끝나고 반 친구들과 아이들을 자주 놀리는데', '아이들을 최대한 자주 놀린다' 이런 식으로 쓰인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어? 놀려?' 무슨 뜻인지 잠깐 헷갈렸다. 앞뒤 문맥상으로 '놀게 한다'는 뜻 같긴 한데 이런 표현이 맞는 건가. 나를 포함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법 따져가며 말하는 것은 아니니 어법 자체는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이상하다. 무엇이 이상한 걸까. 노는 것조차 엄마가 주체가 되어 '놀게 한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여기서 엄마들을 비난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좀 불편한데 실제적으로 엄마들이 아이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므로 엄마라고 하겠다. 양육은 아빠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양육에서 아빠들은 빠지고 비난도 함께 피해 간다). 노는 것조차 엄마의 관리 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노는지까지. 물론 아이들은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맡고 안전한 상황에서 놀아야 한다. 하지만 이 말속에는 그 이상의 통제가 느껴진다. 


2. 공부를 시킨다

 

  위에 말과 비슷한 맥락이다. '공부를 시켜볼까 한다', '이제 악기도 다 그만두고 공부만 시킬 거다', '공부시킬까요 다른 거 시켜볼까요' 이런 말을 자주 본다. 일단 신기하고 부럽다. 공부를 시키면 할 수 있는 건가 싶어서다. 공부는 대체로 하기 싫은 것인데 저 집 아이들은 시키면 하나보다. 저 집 아이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나 보다. 일단 신기하고 부럽다.  아이가 내 말대로 해주면 얼마나 편안하고 좋은가. 저 말은 아이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겠다는 의도로 하는 말일 것이다. 학생인 아이가 자신의 본분인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이 말이 나에게 불편한 이유는 뭘까. 

  

  나는 어렸을 때 공부를 조금 잘했는데 부모님이 저렇게 나서서 시켜줬다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인 것 같다. 부모가 저렇게 나서서 공부를 시키면 저 집 아이는 공부를 잘하겠구나, 부모가 공부를 시키면 하는 아이인가 보다, 우리 집 아이보다 공부 잘하겠네, 하는 부러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찜찜한 부분은 부모가 공부를 시킨다고 애들이 하나? 진짜로? 아, 저 집 아이는 시키면 하는 아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안 하는 아이면? 저 노력, 시간, 비용이 나는 아깝다.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노력, 시간, 비용'으로 노후준비를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뭘 모르는 건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공부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이 말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저 집 아이는 시키면 하나 보네, 부럽다'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키면 공부를 해서 공부를 잘하게 되니 부러운 것도 있지만 '부모 말을 잘 들어서 일단 싸울 일은 없겠네' 하는 부러움이 크다. 


3. 보여진다

  돈에 관심이 많아서 돈, 경제, 재테크 관련 책, 유튜브, 신문을 많이 보는 편이다. 유튜버들이 특히 많이 쓰는 표현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보여진다'. 


  예를 들면 '하반기에는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연준의 빅스텝으로 주식은 한동안 계속 어려울 것으로 보여진다'와 같은 식이다.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어려워 보인다'라고 해야 맞는 표현인데 언제부턴가 누가 이 말을 쓰고 난 후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의 다 이렇게 쓴다. '오, 이거 좋은 표현이다'라고 생각해서 급속도로 퍼져나간 느낌이다. 아마도 전망하기 부담스러우니 한 바퀴 돌려서 표현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 미래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고 가장 예민한 돈이 걸려있는 주제이다 보니 책임을 살짝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는 것 같다. '내가 언제 그 주식 사라고 했어? 오를 수도 있다고 했지'라는 것처럼 '내가 보여진다고 했지 보인다고 했어? 그때는 상황이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에게는 그렇게 '보여진다'.


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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