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콩쿠르 다녀와서
어제 콩쿠르가 나에게는 무척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도 욕심이 생겼다. 더 일찍 시켜줄 걸, 아이가 그렇게 원하는데 더 일찍 시켜줄걸 하는 후회가 생겼다.
예원콩쿠르는 잘하는 아이들이 많이 나오고 상도 적게 준다고 들었다. 작품 연습 기간도 길지 않고 전공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아서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입상을 하지 못하니 나도 아쉬웠다. 땡글이(발레 하는 첫째를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더 아쉬웠겠지.
어제는 저녁으로 라면을 먹기로 했다. 주말 이틀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콩쿠르 따라다니느라 힘들어서 저녁은 간단하게 먹고 싶었다. 라면은 우리 식구의 소울푸드다. 원장님이 땡글이 살 빼야 한다고 하셨는데 콩쿠르로 힘들었으니 오늘만 먹자고 했다. 집에 라면이 없어서 마트 갔다가 집에 들어오니 첫째가 울면서 나왔다. 동생들이 귀찮게 해서 짜증이 나서 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예원콩쿠르 결과가 이미 나왔고 자기는 입상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고 했다. 5학년 콩쿠르는 12시 전에 끝났고 결과는 오후 8시쯤 나온 것이다. 나는 오늘 콩쿠르와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제 나의 목표는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땡글이를 콩쿠르장소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주차를 잘하고 안전하게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 둘째는 아이와 싸우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와 둘이서만 1시간 전후 거리의 콩쿠르장에 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어제는 많이 긴장했다. 남편은 출장을 갔고 집에는 동생 둘이서만 같이 있는다. 서울 한복판으로 운전해 가야 하고 주차도 걱정됐다. 전에 다니던 학원에서는 원장님이 콩쿠르장에 항상 계셨는데 어제는 우리 둘 뿐이었다. 같이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도 시간이 달랐다.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나는 목표를 거의 이루었다(자기 전까지 아이와 싸우지 않아야 하니 아직 목표를 완전히 이룬 것은 아니지만).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너무 피곤해서 콩쿠르 결과가 곧 나온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땡글이가 울면서 자기는 입상자 명단에 없다고 말한 것이다.
아이가 콩쿠르에서 자기 순서를 끝내고 나와 만났을 때 나에게 웃으면서 뛰어왔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나도 웃으면서 달려가 서로 안았다. 너무 좋았다.
땡글이와 나는 지난 몇 년간 갈등이 심했다. 우리는 결코 다정한 모녀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아이도 자신의 무대에 만족했고 나도 보면서 전날보다 훨씬 잘했다고 생각했다. 같이 웃으며 안을 수 있어서 좋았다.
땡글이는 선생님이 지적하신 것들을 떠올리며 동작을 했고 그러면서도 무대를 즐겼다고 했다. 상을 못 받아도 괜찮다고 했었다. 무대가 끝나고 웃으면서 그런 얘기들을 할 때 나도 기분이 좋았다. 네가 즐겼으면 됐다, 최선을 다 한 거면 됐다, 네가 제일 잘했다, 대단하다고 진심으로 말해줬다. 우리 둘 다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꼭 상을 받고 싶다고 했다. 장려상이 상중에서는 가장 낮은데 그 상을 탈 것처럼 얘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누구든 다 그럴 것이다.
3, 4학년 때도 발레 콩쿠르에 몇 번 나갔는데 나갈 때마다 상을 받았다. 거의 다 좋은 상이었다. 사실 그 콩쿠르들은 참가자에게 상을 후하게 주는 것 같았다. 당시에는 전공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라는 의미로 나갔기 때문에 좀 덜 좋은 상을 타도 아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콩쿠르는 달랐다. 본격적으로 발레를 시작하고 처음 나가는 콩쿠르였고 누구든 인정하는 소위 센 콩쿠르였다. 여기서 상을 받으면 아이를 신나게 밀어주고 싶었다. 그동안은 아이가 발레를 그만뒀으면 했다.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적당히 시켜주면서 계속 말했다. 예술은 진짜 재능 있는 사람만 하는 거라고, 안 그러면 비교당하면서 괴로울 뿐이라고, 우리 집은 발레 시켜줄 돈 없다고, 엄마도 직장 다녀야 하고 동생들도 있는데 너 따라다닐 시간 없다고. 다 맞는 말이고 그게 현실이라 발레를 그만두면 모두가 편하다. 그런데 시작도 안 해보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아이가 발레를 간절히 원했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반대하면서 시간을 끌어봤는데 결국 아이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어렸을 때 내가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아빠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빠에게 내가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하는 게 부끄러웠는데 진로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한 번쯤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용기를 낸 것이다. 아빠는 단칼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건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실제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너는 공부해서 의사가 돼야 한다고. 나는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그만큼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다. 공부를 아주 잘했다면 의사가 되어 만족하고 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그쪽은 내 성향이 아닌 것 같다. 내 아빠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무시하고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고 하시며 본인의 의견을 고집하셨는데 나는 그것을 내내 원망했었다. 아빠를 좋아했고 그래서 아빠가 원하는 것을 해드리고 싶어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항상 가느다란 원망이 흐르고 있었다. 아빠는 시작도 해보지 않고,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만 했다고.
그런데 나도 내 아빠가 했던 것을 내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그렇게 원한다는 데 시작도 안 해보고 내 잣대로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동안 땡글이와의 관계는 여러 가지로 갈등이 많았다. 특히 작년과 올해 갈등이 촉발되는 원인은 거의 항상 발레였다. 그래서 이 놈의 발레 때려치우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땡글이가 발레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땡글이가 아니었다. 시작도 안 해보고 못하게 하는 엄마라는 사람인 나와 돈이 문제였다. 발레를 하면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상상 그 이상이다) 그만뒀으면 했다. 그런데 내가 돈이 많다면? 아이가 발레를 했으면 좋겠고 나는 팍팍 밀어줄 것이다.
남들은 아이가 뭘 하려는 의지가 없고 뭘 좋아하는지도 몰라서 힘들다고 하는데 땡글이는 어린아이가 벌써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것 아닌가. 그런데 내가 돈이 없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끌어내릴 수는 없었다. 치사하지만 아이가 갈등 속에서 스스로 그만뒀으면 했다. 하지만 반대하면 할수록 아이는 더 강력하게 발레를 하고 싶어 했다. 나의 두려움과 경제적 무능함 때문에 아이의 꿈을 희생시킨 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자존심이 상해서 허락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랐다.
결국 이사를 하며 학원을 옮겼고 전공반을 시작했고 이제 그 긴 레이스를 시작한다. 콩쿠르 결과가 좋지 않아도, 앞이 뻔히 보이는 힘든 길이어도 그 길을 가야 한다.
어제 땡글이와 단 둘이 콩쿠르장에 가고 아이는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웃으면서 서로에게 뛰어가 안겼다. 그 순간에 내가 그 힘든 길을 가는 것이 결정되어 버렸다.
발레를 전공하고 입시를 치르는 힘겨운 과정, 예술하는 사람들 사이의 비합리적인 관행, 무지막지하게 들어가는 돈, 시간, 에너지 등 안 좋은 얘기는 넘치도록 들었고 대충 알기도 안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정을 차근차근 하나씩 함께 통과해 나가기로 우리는 어제 서로 안으며 말없이 약속했다.
22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