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출퇴근길에 자기 계발 팟캐스트를 매일 들었다. 일할 때 10분을 쉬더라도 틈틈이 책을 읽었다. 감명 깊은 부분에 메모하는 걸 빼놓지 않았다. 삶의 방향이 잡힌 것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법칙을 발견한 듯 들떴다. 그 마음으로 아침마다 부하들을 모아 일장 연설을 했다. 읽은 책이 많아질수록 충고가 잦아졌다. 일에 관한 얘기면 그나마 봐줄 만하지, 어떻게 살라는 얘기만 주야장천 해댔다. 몇 년이 지났다. 내가 했던 식의 충고를, 남에게 들었던 날이 있었다. 묘했다. 이해는 가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집에 돌아와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봤다. 충고에 열정적일 때를 생각했다. 부끄러웠다. 책 몇 권, 경험 몇 번으로 세상이 원리를 깨달은 사람처럼 굴었다.
성인의 문턱을 지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삶에는 분명 답이 있다. 그 걸 찾아야 성공한다.’ 세상에 몇 번 부딪히고 그 생각은 이렇게 바뀌었다. ‘정답은 없다.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자.’ 몇 번 더 무너지고 일어나면서 생각은 또 바뀌었다. ‘세상엔 내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 당시에 확고했던 생각이 변하는 걸 보니, 확신은 금물이라는 게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배우고 경험해도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까. 경험과 공부로 내 줏대를 불리고 깎아나가는 과정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 최종모습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함부로 확신하지 말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내 것이 정답인 양 하는 태도는 오만이다. 상대의 처지를 모두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기만이다. 내 말도, 상대의 말도 정답이 아닐 때가 있다. 책임질 말을 하고 공감하려는 노력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한다.
내가 책임질 선에서 하는 말과 행동, 상대의 입장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으려는 태도. 이 두 가지를 지키려 하다 보니, 앞으로 배울 게 한참이라는 것을 느꼈다. 뭐든 읽고 써보려는 의지, 새로운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기가 생겼다. 한층 더 성장한 느낌이다. 내가 했던 충고를 그대로 돌려받은 경험 덕이다. 기분 나쁘지만, 정신 차리는 데는 역지사지가 좋긴 좋구나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