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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s meaningless Jan 17. 2023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

확증편향, 사후확증편향

심리학 용어 중에 ‘확증편향’과 '사후확증편향'이란 용어가 있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이다. '사후 확증편향'이란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해, 마치 사전에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알기 쉽게 하면, 확증편향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이고, 사후확증편향은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깐’ 이다. 


초등학교 때 불량한 형이 있었다. '이나무'라는 이름이었다. 특이한 이름이다. 신기한 건 그 이름이 맞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들은 그렇게 불렀다. 아무도 학교에서 그 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을 뜯긴 애들의 목격담만 있었다. 으슥한 골목길에서만 나타나는 그 형은, 자기보다 약한 애들이 보이면 주머니를 뒤지고 머리를 때렸다고 한다. 나는 그 형이 학교를 왜 나오지 않는지 물어봤다. 한 친구가 이유를 알려줬다.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공부를 워낙 못했던 그는, 선생님의 계속되는 무시에 학교를 그만뒀다. 한 번은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교무실을 찾아갔는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 같은 놈이 무슨 공부냐.’ 


그 선생님에게서 확증편향과 사후확증편향을 볼 수 있다. 가난함과 낮은 성적으로 그 형을 무시한 건 확증편향. 그 형이 학교를 나오지 않는 걸 보고 ‘역시 불량한 녀석이야’라고 생각했다면, 이건 사후확증편향이다. 


나도 이런 편향에 빠진 적이 있다. 어릴 적 같이 놀던 친구가 있었다. 공부엔 전혀 관심 없고 노는 걸 좋아했던 그 친구는 진지함이라고는 코빼기도 없었다. 평생 그렇게 살 줄 알았다. 5년, 10년 지나서도 똑같을 거로 생각했다. 그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다시 보니 자못 늠름해졌다. 그 친구의 옳은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분명 성숙한 척하는 거라며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머리를 총동원해서 그 친구의 허점을 보려고 노력했다. 친구의 말에 논리적 허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역시 변하지 않았어. 옛날과 똑같아'하며 안심했다.' 정말 변하지 않은 사람은 나였다. 


사람 성질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게 또 있다. 변화를 인정하는 것이다. 내 판단이 틀렸음을 시인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냥 되는 게 아니다. 같은 입장이 되어보고 상처도 입어 보니 조금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충고나 조언을 함부로 꺼내는 게 부끄러운 일이란 걸 알았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면을 생각하지 않는, 표면만 보는 사람이 되고 싶을까. 그 당연함이 단단하게 굳어져 이나무의 선생님이 되었고, 친구를 깔봤던 내가 되었다. 


확증편향과 사후확증편향에 빠져있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나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절대 나만 옳지 않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겸손하면 절반이라도 갈 수 있다. 매 순간 겸허의 자세가 배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나도 누군가의 나쁜 선생님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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